진심으로 웃어 본 적이 언제였던가?
가끔 책장 구석에 꽂혀 있는 사진앨범을 꺼내 보면 마냥 행복해 보이는 한 아이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를 주시하고 있다. 뭐가 그렇게 행복해서 아래위 치아는 물론이고 눈 밑에 인디언 보조개까지 선명하게 보이며 웃고 있는 걸까? 정말 진심으로 행복해 보이는 그 아이는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왜 '완전한 웃음'을 짓지 못하는 걸까?
웃음뿐이겠는가?
환희, 기쁨, 고통, 미움, 슬픔 등 모든 감정에 난 왜 이리 무뎌졌을까?
마흔 살이 넘은 어느 날, 문득 나 자신이 껍데기처럼 느껴진 적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의 높낮이가 크지 않았고 어떤 일에도 감흥이 일지 않았다.
매일 하루가 비슷했다. 일은 힘들었지만 당연히 버터야 했고 집에 오면 아내와 아이를 위해 내 감정은 나만의 동굴 안 깊숙이 집어넣어야 했다.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었고 물론 의미도 없었다.
먼발치에서 보는 세상은 너무 아름다워 보였고 나만 혼자 각박한 현실을 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점점 내 감정은 소멸되고 있었다. 나이가 먹으면서 저절로 주어진 나의 역할은 많아졌지만 매일 그 역할로 살기 위해 '메소드 연기'를 해야만 했다. 제법 그 기간이 길어졌는지 내가 하는 연기에 내가 속은 적도 많았다.
몇 달 전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이혼한 친부의 어머니 즉 나의 친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3개월이 됐다는 것이었다. 친부는 중학교 1학년 때 엄마와 두 형제를 버리고 떠났다. 그래도 얼마 전 우연히 친할머니의 거처를 알게 되어 두어 번 찾아가 보기도 했었다. 남동생은 나보다 연락을 먼저 받고 그동안 묵혀둔 감정이 있었는지 방 안에서 혼자 울었다고 한다. 근데 난 그 순간에도 슬프지 않았다. 실감이 나지 않았던 것도 있었지만 그만큼 내 감정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던 거다.
'연탄길'의 작가 이철환작가님의 책 '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라는 책에는 인간의 본성과 인간의 감정에 대한 깊은 통찰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인간의 감정에 대한 이해와 인정이 인간의 마음을 얻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사실 내가 이 책을 읽은 건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오롯이 나라는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기에 앞서 내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의 감정은 가짜였고 그 연기가 능숙해질수록 난 마음의 병이 생기고 있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오히려 더 밝고 괜찮은 척했지만 마치 좀비가 되어 아무 생각 없이 하루를 살아서 해치운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매 상황마다 적절한 가면을 골라 쓰는 과정은 곤욕이었고 난 거짓된 감정을 연기하는 연기자일 뿐이었다.
어느 주말, 아내와 딸아이가 외출하고 나만 남겨진 시간. 주방에 올려져 있는 보드카를 보았다. 평소 같으면 독한 술을 잘 안 먹지만 나도 모르게 술병을 보는 순간 나는 이미 편의점으로 가 얼음과 오렌지주스를 사고 있었다. 거실 창가 쪽에 있는 테이블에 안주와 함께 홀짝홀짝 언더락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종이 위에 이런저런 내 감정을 쓰기 시작했다. 술기운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감정은 격해지기 시작했다. 내 진심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봉인해 두었던 비밀의 문이 열리고 감정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순간 나에게 질문을 했다.
'왜 그렇게 살고 있어?'
할 말이 없었다.
변명하려 했지만 감정이 쏟아져 나온 이상 그 감정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지막이 혼잣말을 했다.
"미안해"
나에게 미안했다.
그동안 내 감정보다 남의 감정을 살피며 살았다.
분명 가슴속에는 응어리가 꽉 찼는데 밖으로는 평온을 유지하려 애썼던 날들.
갑자기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천천히 나의 하루를 돌아보며 나에게 다시 물었다.
'너의 하루를 얼마나 진심으로 살고 있어?'
'지금까지 진심으로 살아온 날만 합치면 몇 년쯤 될까?
내 인생을 시간으로 펼쳐 괜한 계산을 해보았다.
어린 시절.
모든 감정을 담아 웃고 울었던
그 시절의 나로 다시 돌아가
'진짜시간'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이젠 내 남은 삶의 시간을 진심으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내 감정을 모두 담아 하루를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그게
내 삶에 대한
나 자신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