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이제 좀 가자!!! 제발~!!!"
"왜 이렇게 늦게 와!!! 아... 진짜..."
오늘도 잠깐이면 된다던 기다림이 차를 세운 지 2시간이 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 언제든지 오라하고 가라 했습니다. 어떤 미안함도 배려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전 버럭 화를 냈습니다. 갑자기 그녀가 울기 시작합니다. 또다시 몇십 년을 반복했던 레퍼토리로 저를 무력하게 만들려는 속셈입니다. 절대 듣지 않으려고 귀를 두 손으로 막았습니다. 그런 저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더 세차게 웁니다.
"내가 어떻게 널 키웠는데..."
'그래... 어떻게 날 키웠는데...'
그녀는 제가 열네 살이 되던 해 아빠라는 남자와 이혼을 했습니다. 그 후유증이었는지 갑상선이 안 좋아 몇 년을 이불 위에서 살았습니다. 전 그런 그녀를 먹이고 주무르고 안았습니다. 세 살 어린 동생과 바퀴벌레 나오는 집에서 가장으로 또 주부로 또 아들로 살았습니다. 내가 겪고 있는 이 세상을 다른 세상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고되고 힘들었습니다. 그녀는 제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묻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성인이 되어갈 때쯤 집으로 모르는 아저씨가 몇 차례 들어왔다 나갔습니다. 그러다 열아홉 살이 되자 어느 날 불쑥 들어온 아저씨를 아빠라고 했습니다.
그게 그녀의 방식이었습니다
첫사랑을 두고 군대에 왔을 때 그 첫사랑의 아버지를 그녀와 새아빠가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이유도 모를 채 이별을 통보받아야 했습니다. 며칠을 울었습니다. 억울했습니다. 그 후로 몇 번의 사랑이 찾아왔지만 늘 그녀를 만나고 나서는 헤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그녀의 방식이었습니다.
억울함과 분함에 발악을 할 때면 언제나 그녀는 자신의 무기를 꺼내 절 찔렀습니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이 한 마디가 세상 어떤 칼보다 날카롭고 예리했습니다. 그 칼같은 말로 제 목을 찔러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피 흐르는 절 결코 안아주지 않았습니다. 온통 자신이 겪은 비극 속에 주인공으로만 살았습니다.
그녀는 모릅니다.
부모 없이 혼자 간 소풍에서 얼마나 도망가고 싶었는지.
도시락 반찬을 매일 걱정해야 하는 마음이 얼마나 불안한 건지.
물도 나오지 않는 산동네 집에서 난생처음 우물을 길러야 할 때 얼마나 싫었는지.
끈적거리는 쥐덫에 잡힌 쥐를 죽이는 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
미친 듯이 노력해서 온 이 자리가 모두 그녀의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낳아주고 버리지 않고 같이 있어준 것만으로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와 동생도 버텼습니다. 어린아이가 어른 아이가 되어야 했습니다. 지금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된 모든 공을 자신의 덕으로 말하는 그녀가 미웠습니다. 내가 버틴 시간을 몰라주는 그녀가 미웠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내 마음을 한 번도 물어봐 주지 않은 그녀를 미친 듯이 미워했습니다.
그렇게 미워했던 그녀가 몇 년 전 두 번째 이혼을 했습니다.
얼마 전에 그녀는 드럼을 치는 동영상을 동생과 저의 단톡방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매주 꽃이 있는 곳으로 꿀벌처럼 찾아다녔습니다. 산으로 바다로. 밤낮으로 불러서 자신의 일정대로 저와 동생을 끌고 다니는 것도 줄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자식을 버리지 않고 키워 온 자신을 힘들게 한다는 사랑의 협박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벌이 되어 나비가 되어 동해 번쩍 서해 번쩍이는 그녀가 밉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전화만 오면 핸드폰을 뒤집어 무음으로 했던 제가 몇 주 동안 연락이 없는 그녀의 전화번호를 먼저 누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그녀가 눈에 아른 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눈, 코, 입, 이마의 주름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그녀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서해의 작은 섬에서 국민학교만 졸업한 시골 소녀가
인천에 공장을 다니며 만난 연하의 남자의 아이를 덜컥 임신한 그녀가
술과 바람, 남자가 할 수 있는 온갖 나쁜 짓들을 하는 남편이 있는 그녀가
이혼 후 몇 년의 시간 동안 시체처럼 전기장판의 온기에 의존하며 산송장으로 살았던 그녀가
막막했던 세상 살이 돈을 벌기 위해 리어카 장사부터 일수까지 안 해본 일이 없던 그녀가
만나는 남자들마다 오히려 그녀에게 의지하며 모든 삶의 무게를 혼자 짊어지었던 그녀가
얼마 전까지 그 좋아하는 꽃 한번 바다 한번 보러 간 적 없는 그녀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진심으로 그녀를 미워했지만,
진심으로 그녀를 미워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이제라도
우리가 함께 지내온 시간.
그 운명의 동지로써 그녀를 사랑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녀를 미워한 만큼
그녀를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이 세상 하나밖에 없는
우리 엄마를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진정성의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