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관계란 게 있을까?'
몇 번의 헤어짐을 반복한 후 내 머릿속에서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그리고 천천히 나를 지나간 사람들과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빈 종이에 천천히 써 내려갔다.
이름을 씀과 동시에 그들과 나의 스토리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내가 싫어서 떠나보낸 사람
나를 밀어내고 떠나간 사람
어느 하나 같은 스토리는 없었다.
또 그 시간의 과정 속에서 감정의 높낮이는 다 달랐다.
'관계에도 기-승-전-결이 있는 게 아닐까?'
#관계의 기승전결
기(起) : 약간의 긴장감과 설렘이 공존하는 단계
승(承) : 나와 다른 점을 인식하고 상대방을 탐구하는 과정
전(轉) : 둘만의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나 서로의 관계에 대해 정립해 가는 과정
결(結) : 전(轉)에 일어난 사건을 복기하여 앞으로의 관계를 결정하는 단계
하지만 관계의 결말이 반드시 끝은 아니다.
한 번의 기승전결을 마치고 더 깊은 관계가 다시 시작되기도 하니깐.
'좀 더 이어나갈 것인가?'
'여기서 멈출 것인가?'
빈 종이에 쓴 이름을 다시 한번 천천히 보았다.
지금까지 오랜 기간
내 곁에서 나와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의 차이점은 무엇이었나?'
언젠가 냉장고에서 무심코 우유를 꺼내 바로 입을 대고 먹다가 끈적이는 느낌에 뱉어 버린 적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우유는 벌써 유통기한에 2개월이 지난 상태였다. 안 되겠다 싶어서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몇 개월 전에 엄마가 알이 꽉 찼다고 연신 바로 먹어야 한다고 잔소리를 하며 건네었던 양념게장이 벌써 살이 녹아서 흐물흐물한 상태가 되어 있었고, 반찬가게에서 네 개에 만원에 사 온 나물도 이미 쉬어서 못 먹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 그동안 몸이 피곤하다는 핑계로 또 냉장고에 들어가면 최소 몇 개월이상은 괜찮을 거라는 근거 없는 맹신으로 방치되었던 냉장고 속 음식. 이 음식들을 정리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무관심으로 냉장고에 방치돼 버려진 음식들처럼
내가 관심 갖지 않아서 버려진 관계가 있지는 않을까?'
'어쩌면 관계에도 유통기한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처음에는
좋아 죽을 만큼 매일 붙어 다니다가도
어느새 관심 밖으로 밀려나 관계가 끊긴 사람들이 많았다.
'관계의 유통기한'이 지난 관계.
'그럼 그 반대는 어떤가?'
내 곁에서 오랜 기간 함께 하는 인연들은 시간의 주기가 다를 뿐
지금까지 끊임없이 내가 그들을 궁금해하고 지속적으로 연락을 했었다.
그게 꼭 직접 만남이 아니라도 전화나 SNS에서라도 그들을 찾았고 그들에게 반응했다.
그들 또한 나에게 그랬다.
'물리적 연결이 아닌 마음이 연결된 관계'
그 연결은 서로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세상에 당연히 지속되는 관계는 없다.
더 늦기 전에
관계의 유통기한이 지나기 전에
그들에게 이젠 내가 먼저 다가가려 한다.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 보려 한다.
그 작은 관심의 시작이 관계의 유통기한을 늘리게 될 것을 기대하며...
어쩌면 '관심'은 관계의 유통기한을
한 없이 늘릴 수 있는 '마법의 물약'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