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별이 되다
무적의 '박치기 꼴통'은 '겁쟁이'가 되어 버렸다.
싸움을 일부러 피한 거였지만 이미 학교 애들은 날 겁쟁이라고 불렀다. 첫날 내가 후다닥 교실 앞문으로 뛰어나가는 걸 이미 다 봤기에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게 더 편했다. 굳이 이유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 이후 민석이는 얼마 동안 날 심하게 괴롭혔다. 수업 시간 도중에 이상하게 등이 축축해서 돌아 보니 민석이가 앞니 틈 사이로 침을 뱉고 있었다. 또 어떤 날은 개똥을 젓가락에 찍어서 내 의자에 발라 놓기도 했다. 그래도 참았다. 엄마와의 약속을 꼭 지켜야 했다.
그런데 얼마 후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날 괴롭히는 건 그 어떤 것도 참을 수 있었다. 그건 그 녀석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모두 엄마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그런데 녀석에 이 한 마디에 난 폭발하고 말았다.
"야! 이 새끼, 아빠 전과자라서 도망 다닌다카더라!"
"뭐?! 이 새끼야! 네가 뭘 안다고 씨불여!"
"이 새끼 봐라! 니 겁을 상실했나? 니네 아빠 그럼 어디 있는데? 우리 집에서 한 번도 못 봤는데?"
"돈 벌러 간 거야! 새끼야!"
이미 민석이 녀석이 내 멱살을 잡은 상태였고 난 발 앞꿈치를 들고 버티고 있었다. 나보다 15cm가 더 컸던 녀석은 날 교실 바닥으로 패대기쳤다. 난 힘 없이 쓰러졌다. 그때부터 내 눈은 민석이의 코와 인중만 뚫어지게 봤다. 그동안 나름 참았던 화가 올라왔는지 민석이 녀석은 씩씩대며 나에게 달려 들었고 누워있던 내 배 위에 앉아서 날 움직이지 못하게 한 후 사정 없이 주먹으로 내 얼굴을 때리기 시작했다. 두 팔로 얼굴을 감싸듯 막았지만 팔 사이로 날라오는 주먹을 다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열 대 이상을 맞았다. 하지만 극도로 흥분한 상태여서 그런지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내 눈은 여전히 그 녀석의 코와 인중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미친 듯이 주먹을 갈기던 녀석이 숨을 고르는 순간이 있었다. 그 순간 얼굴을 막고 있던 두 팔로 녀석의 두 팔을 붙잡는 동시에 순간적으로 몸을 일으키며 내 머리로 녀석의 코와 인중 사이를 사정없이 박아 버렸다.
"악!"
짧은 비명이 들렸고 녀석은 순간적으로 뒤로 나자빠지며 코에서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몇 초동안 정적이 흘렀다. 우리를 감싸고 구경하는 다른 애들도 멍한 표정을 지었는데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그 모습을 애들이 보고는 더 무서워하는 표정이었다. 이미 민석이한테 맞아서 피를 흘리고 있었던 내가 웃는 모습은 어떠했겠는가? 사실 이것도 계산된 거였다. 보통 애들을 피를 흘리는 순간 울기 마련이다. 그런데 반대로 웃는다니. 애들을 겁먹게 하기에 효과가 좋다는 걸 난 이미 알고 있었다.
"야! 이 새끼가 지금 뭐 하는데!"
갑자기 담임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와 소리쳤다. 그러고는 서 있는 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내 왼쪽 뺨을 잡더니 사정없이 오른쪽 손으로 뺨을 연속으로 세 번이나 갈겼다. 난 다시 교실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난 순간 정신을 잃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담임 선생님은 배구 선수 출신이었다고 한다.
상황은 선생님의 개입으로 정리가 되었지만 난 다시 엄마를 학교로 불러야 했다. 또 주인집 아줌마한테는 온순한 양인 민석이를 이유 없이 괴롭히고 때린 문제아가 되어 있었다. 그날 바로 방을 빼고 이사 가라고 했지만 엄마는 갈 때가 없다며 제발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주인집 아줌마 다리를 붙잡으며 눈물로 호소했다. 엄마가 울어서 나도 울었고 은수도 따라 울었다.
폭풍 같았던 날도 지나간다.
주인집 아줌마도 다시 한번 이런 일이 생기면 바로 나가는 걸로 했다. 그리고 민석이 치료비 명목으로 엄마가 한 달 치 방세만큼의 돈을 줘야 했다. 모아둔 돈이 없었기에 엄마는 새로 일하는 곳에서 가불을 해서 일단 해결했다. 너무 억울했다. 사실 내가 더 많이 다쳤다. 민석이한테 주먹으로 맞고 또 선생님한테 귀싸대기를 맞고 쓰러져 정신까지 잃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날 걱정해 주는 어른들은 없었다. 엄마한테는 미안했지만 세상 사람들이 다 미웠다. 그렇게 엄마한테 이사 오고 지금까지 참아왔던 질문을 했다.
"엄마, 아빠는 근데 어디에 있는 거야? 아빠가 전과자야? 그래서 도망 다녀서 집에 못 오는 거야?"
"은성아. 아빠는 절대 그런 사람 아니야. 일하러 간 거야! 곧 돌아오실거야..."
엄마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 눈 안에 붉은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지만 떨어지지 않았다. 뭔가 나에게 말하지 못할 얘기기 있다는 걸 난 알고 있었다. 더 물어보지 않았다. 또 엄마가 우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난 이미 아빠가 어디에 간 건지 알고 있었다.
전과자가 아니라는 것도. 일하러 간 것도 아니라는 것도.
아빠는 바람쟁이였다.
이사 오기 전 집에서 막내 이모가 울고 있는 엄마한테 하는 얘기를 들었다. 너무 선명하게.
"에효. 도대체 형부는 뭐 하는 사람이야?
여자에 미쳐서 마누라랑 자식까지 내팽개치고 집 나간 게 몇 번째냐고!"
같은 이유로 이사 오자마자
나간 아빠는 언제 다시 들어올지 몰랐고,
엄마는 언제 다시 웃을 수 있을지 몰랐다.
-진정성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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