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별이 되다(박치기 꼴통)

춤추는 별이 되다

by 진정성의 숲


주인집 둘째 민석이랑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려는 계획은 바로 그다음 날 깨졌다.


"야! 니 우리 집에 사나?"


민석이는 우리 반이었다. 한 반에 65명이나 되니 전학 첫날 애들을 기억한다는 건 아무리 똑똑한 아이라도 어림없는 일이다. 사실 어제는 학교 마룻바닥이 가장 기억이 날 만큼 난 고개를 땅이 처박고 다녔다. 몇몇의 아이들이 아는 척하려고 했지만 그냥 무시했다. 언제 또 이사 갈지도 모르고 긴장이 돼서 말을 더 못했던 것도 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르고 마지막 수업 시간 전 쉬는 시간에 이 녀석이 애들을 끌고 와 날 감싸듯 둘러싸더니 말을 걸었던 거다.


"근데? 뭐! 어쩌라고!"


처음부터 날 얕잡아 보는 듯한 말에 난 단호하고 강하게 말했다.


"이 자슥아, 뭘 째려보노! 디질래?"


다짜고짜 쏘아대는 녀석을 보며 난 너무 당황했지만 태연한 척 표정을 지었다. 민석이 뒤에 두세 명의 아이들이 서 있는 거 보니깐 아마도 민석이가 대장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나도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는 반에서 싸움을 제일 잘했다. 어제 인사할 때 째려봤던 게 생각나서 왠지 민석이 녀석이랑은 언제든 한판 붙을 수 있겠다고 직감했다. 그 순간이 지금이라는 생각에 살짝 긴장감이 들었다.


"네가 뭔데!"


"야! 쪼매난 게 까부네"


"쪼매난 애한테 한번 맞아볼래?"


난 또래보다 키가 한 뼘은 작았다. 그래서 전 학교에서도 처음엔 날 무시한 애들이 많았다. 하지만 좀 자 나면 날 건드는 애들은 없었다. 내 무기는 박치기였다. 한참을 맞고 있다가도 박치기 한 방이면 전세가 역전됐다. 난 코와 인중 사이만 노렸다. 매일 맞고 오는 나에게 아빠가 알려준 초특급 기술이었다.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김일이라는 프로 레슬러의 기술이라고 말하며 정말 긴급한 순간 쓰라고 말해줬다. 근데 난 사실 WWF 프로 레슬러 워리어를 좋아하는데 말이지. 하지만 나의 영웅 워리어의 기술 중에 현실에서 쓸 수 있는 기술이 없었다.


현실은 실전이니까.


'땡땡땡!'


앉아 있는 나를 서서 째려보던 민석이 녀석이 마침 울린 종소리에 분을 참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가며 말했다.


"야! 이따가 학교 뒤로 따라온나!"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난 앞으로 봤고 수업 시간 내내 뒤통수가 뜨거울 정도로 녀석이 날 째려보는 게 느껴졌다. 뒤를 신경 쓰다 보나 시간이 더 느리게 갔다. 선생님 말씀은 들리지도 않았고 수업이 끝나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수만 가지 경우를 상상했다. 하지만 뽀족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결국 마지막 수업 종소리가 울렸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도 모르게 담임 선생님의 종례시간이 지났고, 선생님이 나가는 순간 난 민석이 녀석이 있는 뒤 문과 거리가 최대한 먼 앞 문으로 뛰었다. 그렇게 미친 듯이 앞만 보고 뛰었다. 뒤에서 날 쫓아오며 민석이 일당이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야! 이 새끼야! 도망가나!"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내 필살기인 박치기를 이젠 쓸 수 없기 때문이었다. 엄마랑 이사 오는 용달차 안에서 손을 걸고 약속을 했다. 절대 학교에서 싸우지 않겠다고 손도장까지 찍으며 말이다. 전 학교에서 내 별명은 '박치기 꼴통'이었다. 받아쓰기를 하면 30점이 가장 높은 점수였고, 매일 아이들과 몰려다니면서 내 마음에 들지 않은 애들이 있으면 아무 이유 없이 싸움을 벌였다. 그러다가 한 아이가 크게 다치면서 엄마가 학교로 불려 왔다. 내 주무기인 박치기가 한 아이에 코 뼈를 부러뜨렸고 엄마는 울면서 그 아이 엄마한테 한 시간을 교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 엄마는 내 손을 꼭 잡아주는 거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새벽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네가 애들을 어떻게 키웠길래 제가 저 모양이야! 방세 낼 돈도 없는데 그 집에 돈을 뭘로 주냐고!"


엄마는 또 울었다. 차라리 아빠한테 내 탓이라도 했으면 덜 슬펐을 거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엄마를 실눈을 뜨고 보면서 내 비계가 축축해졌다. 시끄러웠지만 그냥 눈을 다시 감았다. 그날 이후로 난 싸움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하면 안 됐다. 그 아이 엄마가 하는 식당 뒷문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우리 엄마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도망가야 했다. 내가 질 것 같아서가 아니었다. 난 이길 수 있었다. 이길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 이기는 게 다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앞 만 보고 집을 향해 뛰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그래도 쉬지 않고 뛰었다. 어느새 사자 얼굴 모양인 녹색 대문의 손잡이가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 엄마가 마루 밑으로 숨겨둔 열쇠를 찾아서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은수가 배를 까고 씩씩대고 곤히 자고 있었다. 은수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다시 침착해졌다.


잠시 후 민석이 목소리가 들렸지만 난 무시했다. 민석이 녀석은 집에서는 온순한 양이 됐다. 주인아줌마는 민석이가 어디 가서 얘기도 잘 못할 것 같다며 걱정을 했지만 난 속으로 엄청 비웃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준비를 해야 했다. 민석이 녀석과 싸울 준비가 아니라 피할 준비를 말이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러 방문 위로 있는 작은 유리창이 까매졌을 때 엄마가 들어왔다.


요즘 엄마는 전보다 더 이뻤다.

오늘은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릴 듯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었다.

하지만 이사 온 후로 엄마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진정성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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