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별이 되다
학교 앞에는 팥빙수 가게 말고도 왔따분식이 애들한테 인기가 좋았다. 박치기 사건 이후 민석이 녀석은 날 아는 채도 안 했고 난 몇 명의 친구가 생겼다. 철호는 엄마가 시내에서 미용실을 했고 형수네 아빠는 외곽 쪽에서 고물상을 했다. 우리 셋은 학교가 끝나면 운동장에서 한 시간 정도 놀다가 50원씩 모아서 왔따분식에 갔다. 난 은수가 혼자 있어서 오래 놀지는 못했지만 두 친구 덕분에 학교에 조금씩 적응할 수 있었다.
사실 우리는 공통점이 있었다.
철호는 얼마 전 아빠가 교통사고로 죽어서 없었고 형수는 세 살 때 엄마가 도망가서 없다고 했다. 불완전한 우리들은 서로에게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형수네 아빠는 혼자가 된 후 매일 술로 산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술에 취해 시내 길바닥에서 자는 날이 허다했다. 형수는 언젠가부터 우리랑 놀고 집으로 가는 길에 매일 시내를 한 바퀴씩 돈다고 했다. 어디서 자고 있을지 모를 아빠를 깨워서 집에 가야 한다고. 가끔 우리도 같이 간 적이 있는데 형수 아빠가 윗도리와 바지를 곱게 접어서 버스정류장 의자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는 정작 자신의 몸은 찬 바닥에 누워 자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아마 집에 들어온 줄 알았던 거 같다. 차라리 저런 아빠보다는 바람쟁이 아빠가 낫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형수는 요즘 아빠가 술을 더 많이 먹는다고 했다. 시내에 있는 별다방이란 곳으로 아침마다 출근을 해서 오후쯤에는 얼큰하게 취해서 나온다는 거였다. 별다방은 커피만 파는 게 아니었다.
별다방은 이 동네에서 유명했다. 철호가 자기 엄마가 하는 미용실에 별다방에서 일하는 여자들이 자주 온다고 했다. 가끔 미용실 앞에서 놀다 보면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화장을 진하게 한 여자들이 지나가면서 나한테 초콜릿을 주기도 했는데, 그 맛이 정말 꿀맛이었다. 난 그래서 그 여자들을 좋아했다. 너무 이뻐보였다.
"은성아! 오늘도 한 바퀴 돌고 가자!"
"그래? 그럼 간 김에 철호네 미용실에도 가자!"
"그래! 엄마가 아침에 옥수수 쪘다고 니네들 와서 먹으라 카더라!"
왔따분식은 오늘은 가지 않기로 했다. 철호네 미용실에는 먹을거리가 항상 많았다. 그래서 철호네 미용실에 가는 날에는 빈속으로 가야지 더 많이 먹을 수 있었다. 그곳은 그냥 미용실이 아니었다. 동네 아줌마들이 모여 수다를 떠는 장소였다. 철호가 동네 어른들 소문까지 빠삭하게 아는 이유도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미용실은 가게이자 철호의 집이기도 했기에 철호는 아줌마들이 하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도 들어야 했다.
"안녕하세요!"
형수랑 같이 깍듯하고 우렁차게 철호 엄마한테 인사를 했다. 이건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제공해 주시는 철호 엄마에 대한 예의였다. 집에서는 주인집 할머니가 가끔 사 오는 뻥튀기나 아이스크림이 전부였기에 나는 이곳이 정말 좋았다. 나는 꼭 은수한테 줄 몫까지 살뜰히 챙겨 왔다. 그런 나를 철호 엄마가 착하다며 칭찬을 해줬다. 철호 엄마는 밝은 사람이었다. 엄마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어! 그래, 은성이랑 형수 왔나? 저기 소쿠리에 고구마 먹고 냉장고에 우유도 좀 마시고 놀아!"
"네! 감사합니다!"
미용실 안쪽 작은방으로 들어가 정신없이 고구마를 먹고 있는데 세 네 명의 아줌마들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철호와 나는 며칠 전 운동회에서 달리기 반대표로 나갔다가 넘어져서 꼴등을 한 형수를 놀리면서 낄낄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끼리 한참을 놀고 있는데 밖에서 아줌마들이 너무 시끄러워서 우리 목소리가 묻혔다. 아줌마들은 정말 잘 웃는다. 또 반대로 화도 정말 잘 낸다. 주제도 거의 몇 초마다 확확 바뀌는데 그걸 자연스럽게 다른 얘기로 이어서 말하는 걸 보고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오늘의 주제는 별다방인가 보다. 아까부터 웃음소리가 아닌 화내는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거의 모든 아줌마들이 씩씩 되며 이야기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아주 망해야 돼! 진짜!"
"그래! 현수 아빠도 거기 완전 미쳤다 아이가?"
"벌써 갖다 바친 돈만 몇 백이 넘는다 카더라!"
"아이고! 현수 엄마도 아나?"
"쉿! 조용히 해라. 현수 엄마는 모르는데 알면 그 사나운 여자가 가만히 있겠나?"
"거기 미스리라고 있는데 요새 남자들이 아주 난리라카더라!"
"진짜 어떤 년인지 모르겠지만, 아주 숙맥처럼 여우짓을 그렇게 한다카더라!"
누구 하나랄 것 없이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으며 얘기를 이어가는데 그러게 몇 시간째 떠드는 아줌마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너무 몰입한 나머지 그 미스리를 속으로 욕하고 있었다. 그러다 오줌이 마려워서 아줌마들 사이를 지나갔다. 그 순간 한 아줌마가 날카롭게 말했다.
"그년이 아주 요상타카더라.
맨날 하얀색 꽃무늬 원피스에다가 노란색 뾰족구두 신고는
그렇게 엉덩이를 흔들면서 다닌다카더라!"
순간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그리고 바로 미용실 문을 열고 집으로 뛰기 시작했다. 은수한테 가기로 약속한 시간이 두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저번에도 한번 늦게 갔다가 은수가 누워서 호두를 먹다가 코로 들어가서 난리가 기억이 떠올랐다. 은수는 코로 들어간 호두를 꺼내려다가 점점 더 호두가 더 깊숙이 들어가 응급실에 가서 간신히 호두를 꺼낼 수 있었다. 아침에 학교 갈 때 방문을 밖에서 잠그고 가는데 그때마다 은수는 익숙하듯 방 안에서 나에게 얘기했다.
"형아! 오늘은 일찍 와서 나랑 놀자!"
집 근처까지 뛰다가 녹색 대문을 보고 숨을 고르며 걸었다. 그리고 숨겨둔 열쇠를 찾아서 방문을 열었다. 다행히 은수는 벽지에다가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며 내 쪽을 바라보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그런데 아직 완벽한 다행은 아니었다. 방문을 열고 엄마를 기다렸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엄마가 녹색 대문을 열고 들어와 나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새하얀 꽃무늬 원피스와 노란색 구두를 신은 엄마는 너무 이뻐 보였다.
-진정성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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