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고 싶다

에세이

by 진정성의 숲


뛰고 싶어졌다.


정적인 글쓰기를 좋아하면서 동적인 달리기를 하고 싶어졌다. 어제도 근처 보조 경기장 트랙을 10km를 한 시간 동안 뛰고 집에 왔다. 요즘 머릿속이 복잡했는데 뛰는 동안 생각을 하나씩 지워 나갔다. 의도적으로 지운 건 아닐 수도 있다. 그만큼 힘이 들어서 다른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뛰어서 그런지 힘이 하나도 안 들었다. 저녁 봄바람이 적당히 따뜻하면서 시원했다. 트랙에는 커플로 운동을 나온 사람들도 있었고 나처럼 혼자 고독하게 뛰는 사람도 있었다.


7번 트랙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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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뛰면서 보게 될 숫자를 내가 선택했다. 한 바퀴를 돌 때마다 기분이 좋아질 것만 같았다. 난 그렇게 매일 기분 좋아질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선택하는 걸 좋아한다. 오늘도 나한테 선택된 7이라는 숫자! 예상대로 한 바퀴를 돌 때마다 힘이 급격히 빠졌지만 이 숫자가 날 응원하는 것 같았다. 왠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한 바퀴만 더 돌면 행운이 가득 담긴 날 볼 수 있어!"


얼마 전에 러닝화와 러닝 벨트, 스마트 워치를 샀다. 전에는 운동화를 이십만 원 넘는 걸 산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 기능보다 디자인을 보고 샀었는데 이번에 산 러닝화는 화려하면서도 밑창에 카본이 들어간 기능성 제품이었다. 무엇을 시작하면 장비부터 사야 했다. 그래야 제대로 시작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도 며칠 동안 서치 끝에 신중하게 제품을 샀다.


구름 위를 뛰는 기분이었다.

아니 구름 위를 뛰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또 난 기분 좋은 상상을 선택했다.


작년 9월부터 그동안 관리하지 않아 망가져 버린 몸을 재생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렇게 시작한 운동은 헬스와 등산이었고 지금은 달리기로 이어졌다. 살면서 한 번도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어쩔 수 없이 뛰어야 하는 상황에서 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많이 들었다. 엎어지면 코 닿을 만한 곳들도 차로 다녔던 내가 뛰고 싶어지다니! 정말 내가 봐도 놀라운 변화이다. 사실 체중을 감량하면서 식단도 바꿔서 완전 토속적 한국 입맛에서 이젠 유럽에서 살고 싶을 정도로 입맛이 서양화되고 있었다. 이렇게 변화한 가장 큰 이유는 그렇게 좋아했던 술을 끊고 나서부터다. 해장국이 주식일 정도로 술을 자주 먹었다. 절대 서양 음식으로 해장을 할 수 없으니 당연히 맵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뛰고 싶어진 것만 봐도 놀라울 변화다.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시드니 마라톤!'


지누션에 션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보다가 시드니 마라톤 영상을 봤다. 난 한순간에 빠져들었다. 마지막 피니시 라인이 오페라 하우스였는데 마라톤을 뛰는 내내 펼쳐지는 배경이 모두 하나의 작품 같았다. 외국인들 사이에서 션이 뛰는 모습과 거리마다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든 응원의 피켓은 내 심장을 뛰게 했다. 달리기는 그 자체로 내 심장박동 수를 높이지만 달리기로 인해 파생된 꿈도 내 심장을 뛰게 한다. 아직은 턱도 없다. 이제 쉬지 않고 10km를 뛴 게 고작 두 번째다. 그래도 난 꿈을 꾼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최대한 스마트 워치를 보지 않아야 했다. 어제도 처음에는 힘이 안 들어서 가볍게 뛰었지만 바퀴 수가 늘어나면서 다리가 뭉친 것도 같고 발바닥이 불편한 것 같기도 하면서 힘이 급격히 들었다. 그때부터 자꾸 왼쪽 손목에 찬 스마트 워치를 보기 시작했다.


'에효. 이제 3km'


차를 타고 트랙으로 오는 동안 마음 같아서는 30km도 거뜬하다고 생각했는데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변덕스러운 거다. 그만큼 육체가 정신에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 반대의 경우도 물론 많지만 말이다. 이런 마음을 알아채고는 스마트 워치를 보지 않고 뛰기 시작했다. 그러니 내 눈이 자유로워졌다. 조금 뛰어도 얼마나 뛰었는지 궁금했던 마음 때문에 뛰고 있는 내 앞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지 못했던 거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 보였고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50대 중반에 부부가 보였고 대충 봐도 100kg가 넘어 보이는 한 남자가 이를 악물고 빠른 걸음을 걷고 있는 게 보였다. 이렇게 많은 것들이 내 앞에 있는데 난 마음에 안대를 쓰고 있었던 거다. 비단 이런 경우가 그렇겠는가?


'그동안 살면서

마음의 안대를 써서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삶의 풍경을

보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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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을 같은 페이스를 유지하다가 4km 미터 정도 남았을 때부터 트랙에 코너를 돌아 직선 구간을 전력으로 뛰어 보았다. 숨이 턱까지 찼지만 직선 구간을 지나면 다시 속도를 줄여 숨 고르기를 했다. 그렇게 조금 숨이 돌아올 때쯤 어김없이 전력 질주를 할 구간이 나왔다. 그런데 그렇게 몇 번을 하니 전력 질주를 해도 전보다는 숨이 덜 찼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고통도 익숙해지면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겠구나.'


그렇게 9.9km에 다 닿았을 때 멈추기 위해 준비를 했다. 갑자기 행복해졌다. 약 한 시간 동안 격하게 뛰었던 심장을 쉬게 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사실 오기 전에 집에서 갈등을 많이 했다. 이틀 전에 처음 10km를 뛰면서 허벅지가 뻐근했고 종아리가 뭉친 것 같았다. 또 몸에 살짝 열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이 힘든 상태에서 눈 한번 질끔 감고 그냥 집 밖으로 나온 나 자신이 대견했다. 그렇게 보람과 뿌듯함을 충분히 느끼며 속도를 점점 줄였고 내 눈앞에 7이라는 트랙 숫자가 보일 때 멈추려 했다.


그런데 멈춰지지가 않았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 내 다리가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뛰는 동안 그러게 멈추고 싶었던 다리인데 오히려 멈추려 하니 멈춰지지가 않았다. 신기했다. 몸이 지나온 10km 동안 내가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는 것 같았다. 얼마 전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이렇게 열심히 살면 뭐 하나?',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난 왜 이렇게 최선을 다하려 하나?' 보이지 않는 성과와 결과에 지치고 무기력해지고 있었다. 모든 게 허무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야 하는 거구나!'


최선을 다해 살면 몸이 기억하는 거구나. 내가 최선을 다해 살고 싶지 않을 때도 그동안 그렇게 살아온 내 몸이 날 최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보너스의 힘을 주는 거구나. 지치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당연히 있지만 그 순간에도 내가 살아온 관성이 내 두 다리를 이끌어 앞으로 나아가게 하겠구나! 내가 최선을 다해 사는 건 어떤 성과와 결과라는 정지의 순간을 위해서가 아니구나!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멈추지 않고

나아가게 하는 관성을 얻기 위해서구나!'


그래서 난 오늘도 뛰고 싶다.


-진정성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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