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水滴穿石
물방울이
돌멩이에
구멍을
뚫는다
- 한 권으로 읽는 채근담, 378p-
(홍자성/글로북스)
살면서
얼마나 많은
물방울을
떨어트렸는지
이 돌에 몇 방울
저 돌에 몇 방울
돌은 뚫리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다른 돌을 찾았다.
뚫리지 않는 돌을
원망했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왜
돌들이
뚫리지 않았는지
난
오래
떨어뜨리지
않았던 거였다.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 뒤편으로 자신감 없는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렸다. 다른 곳을 보는 척하며 살짝 돌아봤다. 스무 살이 조금 넘어 보이는 한 여자가 친구와 얘기를 하고 있었다. 흔들리는 목소리와 표정에서 나의 스물 살이 떠올랐다. 나의 그 시절 마음속에 각인했던 말이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생활보호 대상자에게 장학금을 주는 대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대학을 갈 수 없었으니까. 오랜 시간 학습되어 온 무기력으로 이 상황을 원망한다거나 힘들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서 의욕도 없었다. 내가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순간마다 나의 환경은 절대 내 힘으로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을 세웠다. 그때부터 나의 모든 시도는 그 마음이 생긴 그 순간뿐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무언가를 이룬 경험도 없었다.
그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것 자체를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할 수밖에 없는 것을 선택했다.
그렇게 껍데기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껍데기의 삶도 그럭저럭 살만했다. 크게 기쁜 일도 없었지만 또 크게 실망하는 일도 없었다.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고 안 좋은 일들은 내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무기력하지만 평온한 나날을 보냈다. 그런데 어느 날 내 평온이 깨졌다.
지하철 1호선에 한 분실물 센터.
"네. 학생이죠? 어디 학교 다녀요?"
"네. OO 대학교요..."
난 작은 손가방을 지하철 위쪽 선반에 올려놓고 내렸다. 가까운 지하철 분실물 센터로 가서 분실물 신고를 했다. 그런데 역무원의 질문에 난 거짓말을 했다. 난 OO 대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평소 너무나 다니고 싶었던 학교였다. 역무원에게는 그냥 물어보는 질문이었지만, 난 그 대답을 하고 난 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때 처음으로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의욕이 생겼다. 아니 꼭 해야겠다는 내 안의 욕망이 씨앗이 심어졌다.
그렇게 난 바로 서울에 있는 편입 학원에 등록을 했다. 그렇게 1년 하고도 6개월을 영어 하나만을 위해 살았다. 처음이었다. 무언가 이렇게 절실히 원했던 적이. 벼랑 끝에 서 있다고 생각했다. 새벽 지하철 첫 차를 타고 학원 자습실 자리를 맡기 위해 차디찬 계단에 앉아서 줄을 서서도 문제를 풀었다. 과목은 영어 하나였지만 영어도 문법, 논리완성, 독해 등 여러 개로 나눠져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대학마다 편입 문제 스타일이 달랐기에 원하는 학교의 스타일로 또 나눠서 준비해야 했다. 그렇게 두 번의 겨울을 보낸 후 난 결국 원했던 학교에 합격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하나의 돌멩이에
나의 물방울을 오랜 시간 절실히 떨어뜨려 본 건 처음이었다.
그렇게 내 마음속에 각인되었던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어'라는 문장을 지웠다. 그리고 새로운 문장을 다시 새겼다.
'물방울도 돌멩이에 구멍을 뚫는다. 단, 그만큼 오래 떨어뜨렸다면'
-진정성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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