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별이 되다(소풍)

춤추는 별이 되다.

by 진정성의 숲


지선이 남매가 떠나고

이제 이 동네에는 더이상 우리와 놀 애들이 없었다.


집을 나와 주황색 빌딩 사이를 걸어 갔다. 아침이라 청소하는 할머니들 몇 명만 거리에 지나다녔다. 은수와 같이 빌딩골목을 나와 큰 대로에 횡단보도를 기다렸다. 파란색이 되자마자 우리는 뛰었다. 항구로 가는 길목이라 큰 트럭 들이 하루에도 쉴 새 없이 지나다닌다고 엄마가 다닐 때 뛰지 말라고 했지만 말이다. 횡단보도를 단숨에 뛰어 오른쪽에 있는 버스정류장에 섰다. 그리고 이곳에 이사온 순간부터 했던 우리만의 놀이를 시작했다.


"형! 저기 오는 파란색 버스 번호 맞추기!"


"그래! 음. 난 8번!"


"음...그럼 난 9번!


나와 은호는 인상을 찌뿌리며 몇 백미터 전부터 보이는 버스 번호를 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트럭들 때문에 매연이 심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점점 파란 버스가 시야에 들어오면서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순간 은수가 소리를 질렀다.


"오예~! 내가 이겼다!"


이겼다고 서로에게 뭐 하나 줄게 없었는데도 너무 재미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연습하다보면 우리도 티비에 나오는 '육백만불의 사나이'처럼 아주 멀리 있는 것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만의 놀이가 끝나면 버스를 타고 40분을 가야 학교에 갈 수 있었다. 우리는 엄마가 시키는대로 버스를 타자마자 의자에 달린 손잡이를 나란히 꽉 잡고 섰다. 그런데도 은수는 출발할 때나 설 때 몇 번을 넘어진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은수가 잡은 손잡이 위로 내 손을 포개어 잡아야 했다. 그렇게 버스에서 쓰러지지 않기 위해 힘들 줬다 뺐다 하면 내릴 때쯤엔 거의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학교 정문으로 걸어가는데 우리 눈 앞에 승용차에서 내리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쪽을 절대 보지 않고 우리는 학교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학교 안에서도 보지 않고 싶은 건 많았다.


아침마다 당번이 가지고 오는 빨간색 우유.

매일 멸치와 김치밖에 없었던 도시락 반찬.

새로산 가방이나 신발을 자랑하는 애들.


그래도 이런 건 그냥 무시하면 되었다. 그런데 학교 행사가 있는 날은 정말 싫었다.


소풍.


며칠 전부터 애들이 소풍 날짜만 오길 기대했지만 난 정반대였다. 운동회나 소풍날이면 학교에서는 부모님들까지 올 수 있게 했다. 운동회때는 부모님이 애들과 같이 참여하는 경기가 있었고 가까운 곳으로 소풍을 가면 엄마들이 선생님 도시락까지 싸서 같이 모여 먹곤 했다. 그런데 난 언제나 혼자였다.


'치~~~'


"애들아! 천천히 내려!"


버스 맨 앞쪽에 앉아 있던 선생님이 일어서더니 중앙 통로에 서서 큰 소리로 아이들에게 외쳤다. 버스가 서자마자서로 먼저 내리겠다며 앉아 있던 애들은 일제히 문쪽으로 향했고 앞에 있는 애들은 뒤에서 밀고 있는 애들때문에 아프다며 난리가 났다. 바로 선생님은 반장인 승엽이에게 이제부터 시끄럽게 하는 놈들은 다 적어 놓으라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오는 내내 흥분해 있던 애들을 침착하게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뭐가 그렇게 좋다고...난리야..."


오는 내내 창가를 바라보며 몇 시간이든 이 버스가 멈추지 않고 달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버스는 출발한 지 30분쯤 지나자 공원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 멈춰섰다.


'왜 이렇게 빨리 온거야...'


이제 모두에게 공평한 시간이 끝난 것이다.


선생님은 먼저 내려 아이들을 주차장 옆 잔디밭에 아이들을 2열로 줄을 세웠다. 낯선 어른들이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어른들은 아이들 쪽으로 손을 흔들었고 아이들들도 손을 흔들며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난 아무 반응 없이 땅에 있는 개미 한마리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야! 너네 엄마는 어디 있어?"


개미에 집중해 있던 나에게 옆에 있던 철호가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계속 무리 없이 혼자 기어가고 있는 개미 한 마리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아주 냉정하게 개미를 밟아버렸다.


늦은 저녁 엄마가 침대 위에서 작은 상을 올려 놓았다. 낮에 사놓은 당근, 시금치, 계란, 분홍소세지, 맛살 등 김밥재료들을 올려 놓았다. 모처럼 맛있는 냄새에 은수는 좋아서 난리가 났다. 손으로 맛살을 재빠르게 하나 집어 도망가기를 몇 번, 엄마가 재료 모자른다며 은수의 손을 치며 재료들을 막았다. 나와 은수는 번갈아가며 김밥 꽁다리를 주어 먹기 시작했다. 김밥 꽁다리는 재료들이 튀어나와 크기가 제 각기였지만 보기 좋게 썰어진 김밥보다 더 맛있었다.


"엄마. 오늘 무슨 날이야?"


"낼 형 학교에서 소풍가는 날이잖아~"


"형! 형은 완전 좋겠다!"


"뭐가 좋아, 임마!"


은수가 나를 엄청 부러워하며 바라보았지만 난 아무 표정 없이 TV를 보고 있었다. 난 알고 있었다. 내일도 엄마는 오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아까부터 나를 보는 엄마의 얼굴이 익숙했다. 그동안 내가 학교에서 어디를 간다고 하면 엄마는 늘 저런 표정을 했다.


미안함을 머금고 있는 얼굴.


담임 선생님이 아주 친절하게 우리들에게 간단히 오늘 일정을 말해 주었다. 오늘은 선생님이 친절한 날이다. 나는 알고 있었다. 선생님은 다른 어른들이 있을 때만 우리에게 친절하다는 것을 말이다. 학기 초에 숙제를 한번 안 해갔다가 선생님에게 싸다구를 맞아 교실 바닥에 쓰러진 적이 있다. 선생님은 평소 수업을 하다가 말고 자신이 배구 선수 시절을 아주 자랑스럽게 거들먹거리며 얘기했다. 자신이 스파이크가 정말 강했다면서 말이다. 그런 재능은 아이들을 때릴 때만 빛을 발했지만 말이다.


일정이라고도 할 게 없는 오늘 일정과 주의사항을 선생님이 말해 주었다. 그리고 바로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낯선 어른들 몇몇이 선생님쪽으로 다가갔고 아이들은 각자 익숙한 어른들의 손을 잡았다. 어른들의 손에는 보냉가방과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두 줄로 서 있던 아이들은 일제히 흩어졌고 나는 아직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내가 밟아 버렸던 개미를 한번 더 짓이겨서 형체를 없애 버렸다.


순간 나는 사라진 개미가 되고 싶었다.


어디로 가야 할 지 무엇을 해야할 지 몰랐다. 공원은 꽤 넓었다. 그래서 더 싫었다. 작은 식물원과 호수가 있었지만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았다. 하늘이 너무나 맑았고 바람도 적당히 불었지만 난 지금 당장이라도 소나기가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넓은 잔디밭 중앙에는 벌써 선생님과 어른들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었다. 매번 같은 멤버들이 선생님을 둘어 싸서 앉았다. 반장이었던 승엽이 엄마와 두 세명의 친한 엄마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네 다섯개의 돗자리가 하나로 연결되었고 엄마들이 가져온 보냉 도시락이 가장자리에 쌓여 마치 하나의 성곽이 되었다. 그들만을 위한 성이 되었다. 선생님은 분명 왕이었고 승엽이 엄마를 필두로 한 신하들이 전국 각지에서 산해진미를 대접하기 하기 위해 호들갑을 떨었다. 햄이 들어간 김밥은 기본이었고 선생님이 특히 좋아하는 갈비도 있었다. 선생님은 대접 받는 게 좋았는지 뭘 이렇게 까지 하셨냐며 얘기했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저번 소풍 때 대놓고 말했다고 애들한테 들었다.


소풍이 싫었다.


일단 애들이 없는 한적한 곳을 눈으로 찾았다. 평소 같았으면 경수랑 민성이랑 놀았겠지만 오늘은 걔들이 아는척 하지 않는 게 날 돕는 거라고 생각했다. 소풍 때마다 나랑 노는 걸 엄마들이 뭐라고 했다. 더 화가 났던 건 내가 다 들리도록 일부러 얘기한다는 거다.


그때 알았다.


누군가에게

들리기 위해 하는 말은

다 나쁜 말이라는 것을.


최대한 빨리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나만의 안식처를 찾았다. 안 그러면 같이 먹자고 얘기하는 애들을 뿌리쳐야 하기 때문이다. 전에 한번 경수네 엄마랑 같이 먹은 적이 있었는데 경수 엄마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싫었다.


안쓰러움과 불쌍함으로 가득한 눈빛.


다행히도 공원 외곽쪽에 긴 의자가 하나 보였다. 다시 돌아가야 하는 시간동안 이곳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도시락 가방에서 김밥이 든 통을 꺼내어 의자 위에 올렸다. 그리고 단무지만 들어있는 통도 꺼냈다. 아침에 먹은 김밥 꽁다리는 그러게 맛이 있었는데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김밥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 때 알았다.


음식의 맛도

내 기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 단 한번도 내 소풍에 엄마, 아빠는 없었다. 가끔 차량이동이 없은 경우 할머니가 온 적이 한번 있었지만 그건 더 최악이었다. 애들이 할머니인 걸 알면서도 다음날 학교에서 엄마냐고 놀렸기 때문이다.


엄마가 싸준 김밥을 먹다가 한 알을 떨어뜨렸다. 신경쓰지 않고 남은 깁밥을 다 먹어갈 때쯤 갑자기 종아리쪽이 따끔거렸다. 순간 손바닥으로 세게 종아리를 쳤다. 얼마나 따끔했는지 치고 나서 더 시원함을 느꼈다. 천천히 손바닥을 보니 개미 한마리가 눌려서 죽어 있었다. 순간 아래를 보니 개미가 떨어진 김밥 주변에 새까맣게 모여들고 있었다. 갑자기 아까 밟아 죽였던 개미 한 마리가 떠올랐다.


그때부터 세 시간동안 난 개미 무리에게 복수를 시작했다. 개미들이 이쪽으로 온 동선을 따라 천천히 개미굴을 찾았다. 그리고 개미굴에 먹던 물을 쏟아 부었다. 어차피 땅 속 길을 다시 만들겠지만 일단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구멍을 발로 비벼 막아 버렸다. 우선 나를 공격했던 개미 무리만큼은 돌아갈 곳이 없게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한참을 개미를 가지고 놀았다.


그렇게 자유 시간이 끝나고 난 돌아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집에 오는 길. 난 진지하게 생각했다.


내가 만약 나중에 학교를 만든다면 소풍이 없는 학교를 만들겠다고!


그런데 그 이날 이후 난 소풍 자체를 갈 수 없게 됐다. 소풍비를 낼 수 없었고 고아원에서 사는 애와 함께 교실에는 딱 2명만이 하루종일 있어야 했다. 소풍이 없어졌으면 하는 내 소원은 너무 빨리 이뤄졌다.


소풍가는 날 1.png


소풍 2.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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