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好意)의 기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특별한 느낌

by 진정성의 숲




"끼~치~~"


지하철 문이 열리고 나는 역사를 빠져나가기 위해 출구를

찾고 있었다.


이때 내 눈에 포착된 한 사나이가 있었다.

높이가 낮은 평상 같은 의자에 고개를 무릎까지 숙이고는

곤히 잠들어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어제가 토요일이었으니 불타는 밤을 보냈겠지 생각하고

지나치려는 순간 남자가 앉아있는 의자 밑으로

지갑이 보였다. 분명히 저 상태라면 떨어트린 지갑을

보지 못하고 갈 확률이 99%이다.


과음으로 몇 차례 지갑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던 나는

마음속 깊이 동병상련의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인사불성인 그 남자에게 지갑을 챙겨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커졌고 내 발은 이미 그 남자 앞에 서 있었다.


먼저 의자 밑에서 지갑을 조심히 주어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지갑이 밑에 떨어졌어요. 챙기셔야 할 것 같아요."


살짝 그 남자의 허벅지 쪽을 흔들었지만 반응이 없었다.

몇 차례 흔드는 동안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던 지인이 아는 척을 했다.


"아시는 분이세요??"


"아니..."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을 마무리 짓기 위해 지인과의 대화를

짧게 마치고 다시 남자를 깨우려 했다. 지인이 사라지고

남자에게 다시 말을 건네려는 순간.


"야! 좀 그냥 내버려 두라고~~ 아이씨~정말"

"왜 자꾸 깨우고 지랄이야~XX야"


갑자기 겪은 이 황당한 상황에서 난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

날 쏘아보며 육두문자를 내뱉는 그를 보며 난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그 남자가

따발총처럼 쏟아내는 육두문자의 발음에 따라 움직이는 입모양만 보였다.


때마침 도착한 지하철에 문이 열렸고 지하철에서 내린 사람들은 나와 그 남자를 돌아보며 자기들끼리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 상황 자체가 너무 당황스러워 어떤 생각도 나지 않았고

온몸이 뜨거워졌다.


생각했다.


'아 이 사람은 나에게 왜 그럴까?'

'호의를 베픈 나에게 왜 그럴까?'


나는 빨리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랩을 하듯 빠른 말투로 얘기했다.


"지갑이 떨어져서 잃어버리실까 봐 알려드린 거예요..."


그 와중에도 내 말이 들리지 않는지 그 남자는 계속 욕설을 퍼부었다. 지갑을 빠르게 남자 곁에 놔두고 남자의 욕소리를 등 뒤로 하면 빠른 걸음으로 그 상황에 벗어났다.


역 계단을 내려와 목적지와 가까운 출구를 나오며

많은 생각이 들어 머릿속이 복잡했다.


당연히 호의는 호의로 돌아와야 한다고 믿었다. 이런 생각의

근저에는 '호의에 의한 대가'를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자체가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항상 같은 결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이번 상황을 통해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생각했다.


호의와 악의는 어떤 기준에서 판단될까.


나의 호의를 악의로 받아들였던 그 남자가 마신 술은

어쩌면 그냥 술이 아니라 사람마다 각자가 옳다고 믿고 있는

주관과 같지 않을까.


생각했다.


술에 취하듯 자신의 주관에 취하지 않아야겠다고.

호의를 주면 반드시 호의라는 대가를 받게 될 것이라는

나의 주관에 취하지 않아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