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서 비명을 지르다.
오늘은 다 하지 못한 영국의 두 번째 이야기. 영국 길거리에서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날 확률에 대한 이야기다.
누구나 한 번쯤 길을 걷다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을 것이다.
학교 사람? 친구? 교회 동생? 선생님? 친구 어머니?
얼마 전에 내 친구들도 우연히 식당에서 우리 엄마를 만나고 깜짝 놀라 기쁜 마음에 나한테 연락했었는데.
생각해보면 우리가 경험한 영국 길거리에서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확률인 것이다.
그것도 서로 그곳에 있는지 모른 채. 정말 우연히. 길을 가다가.
이 날은 런던 곳곳을 둘러보기 위해 하루를 시작했다.
브리티쉬 뮤지엄에 들려 로제타스톤, 모아이 석상을 봤다. 아시아나에서 후원한 오디오 가이드? 멀티가이드?를 통해 그림과 실물을 비교하며 한국어로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박물관을 둘러본 후 내셔널 갤러리를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크리스마스 즈음이라 곳곳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되어있었고 사람들은 다들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듯했다. 골목 곳곳이 너무 예뻐서 한눈을 팔다가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을 놓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가슴 뛰게 만드는 느낌의 도시였다.
어디로 가도 길은 나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길을 걸어가던 때였다. 가게들이 줄지어있는 길.
신랑과 수다 떨며 지나가다가 동시에 외쳤다.
내 눈이 잘못됐나 싶어 다시 뒤를 돌아봤다. 신랑도 뒤를 돌아봤다.
"쟤, SH랑 닮지 않았어?" 긴가민가했다.
아마도 영국에서, 런던 한복판에서, 서로 한국에 있는지, 영국에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지나가다 만날 거라고는 생각 못했으니까. 아닐 거라 생각했다.
"에이, 아니겠지. 말이 돼?" 가던 길을 그냥 가기로 했다. 한 50걸음 걸었을까?
왠지 모를 찝찝함과 괜히 가서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 만약에 우리가 아는 SH가 맞다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는 건데. 신랑과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가볼까? 말까? 가볼까? 말까? 이백만 스물여섯 번쯤 고민한 것 같다.
"가보자, 갔다가 아니면 아닌 거고. 맞으면 엄청난 거지!!!"
그렇게 우린 다시 뒤로 돌아 SH와 닮은 사람이 있던 곳을 향했다. 우리가 멈춰 선 화장품 가게.
멀리 서서 한참 멀뚱멀뚱 쳐다봤다. 우리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그녀도 우리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그리고 3초 정도 흘렀을까?
함께 비명을 질렀다. 이제야 서로 알아본 것이다. 아마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 쳐다봤을지도 모르다.
그만큼 깜짝 놀라서 서로 비명을 질렀으니까. SH는 모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하던 동생이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춘천 명동도 아니고 서울 명동도 아니고 어디, 대전, 울산, 부산도 아니고 영국에서? 런던 길 한복판에서? 우연히 지나가다가? 서로가 영국에 있다는 것조차 모르다가? 갑자기? 이렇게?
어안이 벙벙하다는 표현이 참 적절했다.
서로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렇게 만난 게 어이없기는 우리 셋다 마찬가지였다.
"뭐야? 뭐야!"를 백번은 외친 것 같다.
알고 보니 SH는 런던으로 워킹홀리데이를 왔고
우리가 지나간 화장품 샵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원래는 매장 밖으로 잘 나와있지 않는데
그날따라 사람이 없어서 매장 밖으로 나가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핸드크림을 발라주도록 매니저가 시킨 모양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에이, 아니겠지. 하고 지나갔으면 억울할 뻔했다. SH는 매니저가 매장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한테 핸드크림 발라보라고 말하라 했을 때 기분이 별로였다고 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나서기 쉽지 않은 일이니까.
우리를 만나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매니저가 매장 밖으로 나가라고 안 했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 어이가 없다 못해 웃음만 나오는 이 상황을 한참 동안이나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받아들이고 일하는 중인 SH를 더 방해할 수 없어 저녁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런던에서 이렇게 지인을 만나다니.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SH와는 저녁에 다시 만나 함께 식사를 하고 커피도 마시고. 런던아이를 보며 사진도 찍고. 함께 산책도 하며 그동안의 근황 토크를 했다. 홀로 하는 외국생활이 얼마나 외로운지 잘 아는 사람들로서 이렇게 함께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다. 다시 생각해도 너무너무 신기한 일이다.
얼마나 될까.
영국 런던 길거리에서 우연히 지나가다가 아는 사람을 만날 확률.
우리가 해냈다.
SH를 만나기 전 박물관도 구경하고, 미술관도 구경하며 여행을 이어나갔다. 런던에서 꼭 봐야 한다는 빅벤도 보기는 봤다. 공사 중이라 우리가 볼 수 있는 모습은 이런 모습이 전부였다. 내가 영국에 또 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데 빅벤의 모습이 공사 중인 모습이라니. 아쉬웠지만 기필코 꼭 한번 다시 오리라! 생각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너무나 특별했던 런던에서의 하루.
확률을 무시하고 우리가 승리한 것 같은 하루가 지나갔다.
여전히 사람들은 다가올 크리스마스로 행복해 보였고
우리도 그 행복에 함께 물들어 점점 행복해졌다.
그렇게 영국에서의 또 하루가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