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최남단, 우수아이아의 이야기
세상의 끝, 우수아이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 같다.
나는 안 봐서 모르지만 영화 해피투게더에서 빨간 등대의 장면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감독: 왕가위
출연: 장국영, 양조위, 장첸
개봉: 1998. 08. 22. / 2009. 03. 27. 재개봉
나는 영화보다는, 책에서? 교과서에서? 세상의 끝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 우수아이아에 우리가 가볼 수 있다니. 정말 꿈만 같다. 늘 그렇듯, 우수아이아까지 가는 여정도 고단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는데, 비행기 시간이 애매해서 공항에서 노숙했다.
사진만 보면, 와 대단하다. 저기서 저러고 누울 수 있다니!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나 말고도 여러 명이 주변에 누워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물론 처음 누운 건 나인 듯... 하다. 나름 짐을 도둑맞지 않기 위해 가방 하나는 베고, 하나는 메고, 나머지는 내 앞에 가져다 놓았다. 이제 보니 나보다 가방이 소중한 느낌.. 그땐 어쩔 수 없었다. 특히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눈앞 소매치기를 목격한 이후로 원래 겁쟁이가 초초초초겁쟁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늘을 날아 점점 우수아이아에 가까워질 때의 기분은 설렘 그 자체였다. 세상의 끝에 정말 우뚝 선 기분이랄까.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도 샘솟았다.
우수아이아에 내려 짐을 찾고, 택시를 타고 시내로 이동했다. 마을이 그렇게 크지 않아 숙소 근처를 걸어 다니며 눈으로 모든 것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많은 블로그들을 보면 우수아이아에 가면 꼭 가야 하는 맛집으로 두 군데 정도를 꼽는다. 첫 번째는 킹크랩 가게, 두 번째는 백 년이 넘었다는 카페. 하지만 우리는 누군가. 일단 가난한 세계 여행자, 남 들다 하는 건 하기 싫어하는 사람들 아닌가. 킹크랩은 정말 먹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 돈으로 고기를 사 먹었다. 최근 방영된 예능프로그램 <트래블러> 아르헨티나 편에서도 우수아이아가 방송됐는데, 킹크랩 요리 먹는 장면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트래블러 - 아르헨티나
연출:최창수, 김재원, 김선형, 김은지, 고혁준
출연:강하늘, 안재홍, 옹성우
방송 2020, JTBC
생생한 아르헨티나의 모습을 보기 원한다면 이 예능 강력추천이다. 출연진 간의 케미가 아주 굿.
아무튼. 그렇게 킹크랩은 패스하고 킹크랩 수프 정도로 만족하기 위해 들어갔던 식당은 아주 대실패였다.
역시 맛집을 찾아가는 이유가 있는 건가. 세상에 네상에, 이렇게 맛이 없을 수 있는 것인가 할 정도였다. 아직까지 기억하는 거 보면 말이다. 테이블에 깔아준 종이 테이블 매트 모서리를 쭈욱 찢어 한글로 이 가게의 후기를 남기고 왔던 기억도 난다. 적어도 한국인만큼은.. 우리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바라서.
소심하게도 적었다. 파란 네모 안에 솔직히 음식은...... 별로라고.
밥을 먹고 사람들이 다들 들린다는 백 년 된 카페를 갈까 하다가 뭐가 다르겠냐.... 하는 생각이 또 발동했다. 이럴 때 보면 닮아도 너무 닮았다. 그래서 그냥 햇살 좋은 햇살 맛집 카페로 들어갔다.
나름 분위기가 괜찮았던 카페. 사람들을 구경하기 아주 좋았다. 그렇게 카페 탐방은 성공했다.
우수아이아에서 했던 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을 차례다. 사람들은 영화에 나왔던 빨간 등대를 보러 가기 위해 배를 타거나, 펭귄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투어를 신청한다. 우리는... 앞에서도 말했듯 가난한 세계 여행자. 나름 이유도 있었다. 빨간 등대가 유명하기는 했지만 영화를 직접 보지 않은 사람으로서 그다지 와 닿지 않았고. 펭귄은 뉴질랜드에서도 코앞에서 봤기때문. 그래서 우리는 이 시간들을 기억하기 위해 각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엽서를 보내기로 했다. 당시만 해도 아주 글로벌한 가족이었다. 우리는 세계를 돌고 있었고 양가 부모님은 한국에, 신랑 동생은 뉴질랜드에, 내 동생은 중국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엽서도 각국으로 보내졌다.
먼저 예뻐 보이는 엽서를 선택했다. 이 엽서들은 세상의 끝에서 보낸다는 의미가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우수아이아의 모습을 담은 엽서로 선정했다. 그렇게 구매한 엽서에 예쁘게 글도 써서 보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관건은, 각 나라로 보내는 나라 코드, 주소도 영어로 알아야 했고. 아무튼 복잡했다. 우여곡절 끝에 주소를 모두 적고 우체국에서 우표까지 붙였다.
그리고 빨간 등대 우체통에 쏙. 지금 생각해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고,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인 것 같다.
이렇게 보낸 엽서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한국으로 보냈던 엽서는 잘 도착한 것 같았고 뉴질랜드로 보낸 엽서도 무사히 도착했다. 다만, 중국으로 보낸 엽서만 행방을 알 수 없다. 어디 있을까. 뭐가 중요한가. 보냈다는 게 중요하지. 이럴 줄 알고 인증숏까지 찍어놨다. 참 잘했어요.
걸어 다니며 우수아이아 곳곳을 누볐다. 언덕도 오르고, 다시 내려가기도 하고. 이동을 위한 버스를 예매하기도 하고. 마트에서 고기도 사고. 파스타도 해 먹고. 특별할 것 없지만 매우 특별했던 우수아이아의 이야기다.
세상의 끝, 지구 최남단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
살면서 또 가볼 수 있을까? 세상의 끝이라고 해서 매우 추울 줄 알았는데 패딩 정도로 충분히 버틸만했고
그곳에도 여전히 행복하게 웃는 사람들, 바삐 걷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맛있는 음식이 있었고, 분위기 있는 카페가 있었다. 역시 세상은 어디에 있든 다를 게 없는 건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