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여행, 우럭라면
"우리 여행 가자"
"........"
남편의 갑작스러운 말에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어이없는 웃음만 지었습니다.
그이 유인즉, 며칠 전 우리 부부는 실업자가 되었고 남은 것은 작은 원룸 보즘금 200만 원, 작은 차(티코), 그리고 현금 500만 원이 전부였습니니다.
결혼한 지 10년 동안 알뜰살뜰 모아 작은 집하나 내 집으로 만들고 싶어서 정말 열심히 살아왔는데,
살다 보니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고 살다 보니 나쁜 사람 만나서 사기를 당하며 그동안 모아놓았던 전재산이 날아가버렸습니다.
그 당시 믿었던 지인에게 보증을 서준 것이 잘못되어 그 많은 빚을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여파로 직장도 잃었습니다.
9살, 5살 어린 두 딸들과 우리 부부는 작은 원룸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며 우리 스스로를 한탄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의 여행 가자는 말에 어이가 없어서 콧방귀만 뀌고 말았습니다.
"우리 어차피 인생 이리된 거 좀 쉬자, 그동안 죽어라 일하느라 애들하고 여행 한번 못 가봤잖아, 그렇게 열심히 일해봐야 모아봐야 이렇게 된 거, 그냥 아무 생각 말고 며칠 놀자 그리고 다음에 생각하자"
"그래도 될까?"
나중에 생각하자는 말에 암담했지만 고민한다고 다시 원점으로 갈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결국 그러자고 하며 옷을 챙기고 짐을 쌌습니다.
"차에 다 안 들어가니 꼭 필요한 것만 싸자. 그늘막, 코펫, 갈아입을 옷"
"아빠? 우리 이거 가져가요. 이 책상은 꼭 가져가야 해요"
우리 딸들이 어릴 때부터 사용하던 구구단이 적힌 노란 플라스틱 책상-딸들의 보물였습니다. 남들은 더 귀한 것이 보물였을텐데 우리 두 딸들에게는 고작 오래되고 낡은 책상였습니다.
"그래 가져가자 다리 접어서 옆으로 놓으면 되지 뭐, 가져가서 우리 딸들 식탁 하자 하하하하"
남편은 목이 메인채 웃었습니다. 저도 그 보물을 소중히 챙기는 딸들을 보며 눈에는 눈물이 입가에는 미소를 지으며 짐을 챙겼습니다.
"아빠, 엄마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아빠 엄마 힘내세요~~"
여행을 가는 내내 우리 딸들은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간혹 좁다며 둘이서 투닥거릴 때도 있었지만 또 금세 둘이 소곤소곤 속삭이며 노래도 불러주었습니다.
그렇게 6시간여 정도 달려서 도착한 곳은 완도 그곳에서 아이 들먹을 과자도 사고 라면도 사고 작은 낚싯대도 샀습니다.
물건을 구입하고 배를 타고 우리의 목적지인 소안도 섬에 도착했습니다.
"우와~~ 바다다..... 엄마? 여기 돌 좀 봐요 돌이 호호호호 너무 이뻐요"
그렇게 아름다운 곳은 바로 소안도 미라리 해수욕장에 도착해서 그늘막을 펴고 짐을 풀었습니다.
우리의 작은 그늘막에 비하면 주변에 펼쳐진 텐트들은 정말로 크고 튼튼하고 좋아 보였습니다.
"아빠? 우리 텐트는 너무 작아요, 돼지 3형제가 지은집중에서 가장 허술한 집 같아요"
"그래도 여름이라 다행이지, 여름에는 여기 바닥에서 자도 되는데 그래도 우리는 그늘막이 있어 다행이지 하하하하"
남편의 말에 아이들도 웃으며 아빠의 말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오늘 저녁은 멋진 바다 보면서 과자파티하자"
"아싸~~ 좋아요"
딸들의 보물인 책상 위에 완도에서 사 온 과자들을 펼쳐놓고 동글동글 조약돌이 깔린 해변에 둘러앉아서 철썩이는 파도소리, 또르르르~~ 조약돌 굴러가는 아름다운 소리와 함께 우리는 행복한 과자파티를 했습니다.
"우리는~~"
"행복한 가족"
"우리는~~"
"즐거운 가족"
"우리는~~"
"대단한 가족~~"
남편이 외치면 아이들이 답하는 구호, 언제부터 그랬는지 우리 가족을 위한 구호가 되었습니다.
"이제 오늘은 그만 자고 내일 또 구경 다니며 놀자"
"네 알겠어요"
좁은 그늘막이지만 우리 4명은 꼭 달라붙어 잠을 청했습니다.
"여보~ 나 갔다 올게"
남편이 조용하게 일어나서 낚시를 하고 온다고 말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더운 여름 비좁은 텐트 속에서 저와 아이들을 위해 나간 것 같아 마음은 불편했지만 한 사람이 피해주니 그제야 좀 잠이 올 것 같았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습니다. 힘들게 운전했는데 잠도 못 자는 모습에 미안하고 걱정도 되었습니다.
얼마동안 잠을 잤을까 소리가 들렸습니다.
"여보? 이것 봐, 엄청 많지?"
"어머, 이거 우럭?"
"응 내가 방파제 가서 던져봤는데 이렇게 많이 잡았어"
좀 작은 우럭이지만 남편은 많이도 잡아왔습니다.
"여보? 배고프지 않아? 요거 우럭 넣고 라면 끓여 먹을까?"
"이 새벽에 먹는다고?"라는 말을 하려다 저는 물을 끓였습니다. 남편을 생각하니 잠보다 더 중요한 것을 깨닫고는 라면을 삶고 손질해 준 우럭을 넣고 팔팔 끓였습니다.
"너무 맛있다. 이렇게 귀한 우럭을 넣고 라면을 먹다니 대박인데"
"정말 맛있다. 라면이 이렇게 맛있을 수도 있는 거야? 호호호"
아이들이 깰까 봐 조용히 그늘막 밖에서 라면을 먹는 중 갑자기 눈을 비비며 나타난 둘째 딸아이가 우리를 째려보며 말을 했습니다.
"너무해, 나빼놓고 엄마아빠만 맛있는 거 먹고 너무해"
"이리 와~ 많으니까 어서 먹어"
"하하하하 자다가 깨서 아주 잘도 먹네"
첫째도 일어나 함께 우럭라면을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