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라의 전성기 9

여고시절의 추억만들기 & 윤석의 그림자

by 소소예찬

13

“현주야? 오늘부터 00대학교 축제 시작이래, 유명한 가수도 온다잖아, 우리 구경 가자!”

미자는 퀴라를 보자마자 대학축제 구경 가자는 말만 해댔다.

00대학교는 퀴라와 미자가 다니는 사립고등학교 바로 위쪽에 위치해 있는 사립대학교였다.

후기대학, 그 당시 서울에 사는 수험생들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떨어지면 후기로 지방대학인 이곳 00대학으로 많이들 내려왔다. 그래서인지 그 대학의 학생들은 다른 대학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세련되고 멋진 학생들이 가득했다.

여학교인 퀴라의 고등학교 여학생들은 늘 쉬는 시간마다 그들을 보며 그 대학의 여학생 언니들의 헤어스타일, 패션스타일을 이야기하느라 쉬는 시간 10분이 그들에게는 너무도 짧고 아쉬웠다.

더군다나 대학축제기간이 되면 여고생들에게는 더더욱 부러워하며 그 현장을 바라만 봐야했다.

그러던중 쉬는시간 미자는 퀴라를 불러내서는 귓속말로 속삭였다.

"현주야? 우리 오늘 저녁시간에 대학축제 가자"

“우리 야자 하잖아 어떻게 가니?”

“뭘 어떻게 가? 그냥 가면 되지!”

“우리 자리에 없으면 야자 담당선생님한테 금방 발각될 텐데...”

“현주야? 내가 누구니?”

“뭐? 너 미자잖아 호호호호”

“그래 나 미자야, 미자를 우습게 보면 안 되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나만 믿고 따라와~~”

미자의 대담한 성격 덕분에 퀴라는 미자가 하자는 대로 책상과 의자를 들고 계단 모서리에 감춰두고 나서 대학축제장으로 구경을 갔다. 00 대학교는 퀴라의 고등학교 바로 위에 위치해 있었으며 담벼락도 없이 주목과 향나무로 가득 찬 정원수로 구분되어 있어 퀴라의 친구들은 종종 대학식당에서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오므라이스, 돈가스, 육개장 등을 먹을 수 있었다.

물론 대학생인척 하며 드나들던 식당이었고 퀴라와 미자는 그 순간만큼 300원이란 돈을 내고 당당하게 대학생 역할을 장렬히 해냈다.

그렇게 밥을 먹고 나와 매점으로 가서 뿌듯한 마음에 커피 한잔을 뽑는다.

단지 학교 조회시간에 “00 대학교 식당에 가는 학생들이 종종 있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라는 교장선생님의 훈계가 있으셨지만 둘은 다행히 한 번도 걸린 적은 없었다.

그렇게 맛있고 저렴한 음식을 맛볼 수 있고 다른 세상에서 온듯한 사람들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행복감에 퀴라와 미자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경계선인 위험한 정원수를 넘어야만 했다.

“현주야? 조금만 기다려봐...”

“응”

미자는 퀴라에게 잠시기다리라고 하며 교실로 들어갔다.

“헉헉헉 현주야? 이거 받아”

“이게 뭐야?”

“옷, 얼른 가자”

“이 옷은 뭔데?”

“후드티 그거 입고 가야지”

“아하~”

퀴라와 미자는 미자가 가져온 옷을 들고 대학캠퍼스 안으로 들어갔다.

“우와! 조명 죽여주는데...”

미자는 무대의 화려한 조명과 음악소리에 맞춰 후다닥 달려가 무대 가까이에 도착했다. 그리고 반짝이는 조명과 고막을 찢어대는 음악소리에 미자의 몸을 맡긴 채 대학생 언니 오빠들 속에서 온몸을 흔들어댔다.

“미자야? 모자 써! ”

그 당시 후드티가 유행였기에 미자와 퀴라는 미자가 친구들에게 빌려온 후드티를 입고 모자를 얼굴까지 푹 눌러써서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가렸다.

“알았어, 우와 신난다”

50분이 한 시간 야자시간였기에 퀴라와 미자는 야자시간이 끝나기 전까지는 열심히 즐기다 시간 맞춰 몰래 들어가야만 했다.

“미자야? 우리 대학 꼭 가야겠다 그렇지?”

“그럼 그럼, 이렇게 신나고 즐겁고 행복한 곳을 왜 안 가겠니? 우리도 분발해서 대학 들어가고 들어가서 미팅도 하고 축제도 즐기고 신나게 대학생활 해 보자”

“그래, 그럼 우리 공부 열심히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가? 이히히히”

퀴라와 미자는 아쉽지만 돌아서야만 했다. 공부도 해야 했지만 이제 야자시간이 끝나갈 시간이 다 되었기에 야자시간을 마치는 종이 울리기 전 둘만의 책상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아야만 했다.

“가자...”
“아쉽다. 더 놀고 싶은데, 안녕...”

아쉬운 마음에 뒷걸음질 치며 축제장을 향해 손을 흔들어야만 했다. 퀴라와 미자의 교실은 1층 마지막 교실이었다. 교실옆에는 창고가 있었으며 창고 위는 바로 계단이 있었다. 그래서 계단 위 모서리에 책상을 숨기기에 안성맞춤이었던 곳에서 퀴라와 미자는 숨겨두었던 책상을 다시 들고 살금살금 교실로 들어갔다.

“감쪽같지? 헤헤헤헤”

“그래! 미자 너는 머리가 비상한데.... 그렇게 좋은 머리를 그런데 쓰지 말고 공부하면 1등 할 텐데.... 이히히히”

잠시나마 퀴라와 미자는 앞으로 다가올 대학생활을 온몸으로 느끼며 공부에 대한 열정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날 퀴라와 미자는 나머지 야자시간 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밤 10시가 넘었지만 퀴라의 어머님이 얼마전부터 운영하시는 작은 식당 가게 안은 아직 환하게 불빛이 남아 있었다.

마지막 한잔 더 기울이고 싶은 손님들이 남아 취기에 기대어 힘든 세상일을 이야기하며 회포를 풀고 있는 듯 간판 속 형광등이 꿈뻑꿈뻑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그래 배고프지? 고기 먹을래?”

“괜찮아요 저 방에 가서 공부할게요 손님가시면 불러요 청소 도와드릴게요”

“아니다 피곤할 텐데 어서 일찍 자, 청소는 낼 아침에 해도 돼”

퀴라의 어머니는 혼자 식탁 의자에 앉아 꿈뻑꿈뻑 간간이 졸고 있는 간판과 함께 눈을 감았다 떴다 하고 계셨다. 퀴라도 엄마가 걱정돼서 방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엄마옆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아버지라도 계셨으면 엄마가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

퀴라는 마음이 아팠다. 퀴라의 아버지는 직장을 그만두시고나서 퇴직금으로 작은 식당을 차리고 퀴라의 어머니와 장사를 하셨다. 하지만 장사를 시작한 지 일 년도 되지 않아 주변사람으로부터 사기를 당하셨다.

귀가 얇으셨던 퀴라의 아버지는 동갑인 이웃 친구로부터 가계수표를 발행해서 사용하면 혜택이 많다고 꼬드기는 말에 퀴라의 아버지는 그만 가계수표를 다발로 발행받았고 그 발행한 가계수표다발을 그분이 들고 도망을 가버렸다.

그리고 퀴라의 아버지는 사기당한 빚을 갚기 위해 일수를 썼다가 갚을 능력이 되지 않아 결국 구속되고 말았다. 그래서 퀴라의 어머니는 낯에는 돈을 구하러 다니느라 가게문을 열지 못하신다.

합의를 해야만 퀴라의 아버지가 나온다는 말에 여기저기 돈을 구하러 다니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주말이면 퀴라는 퀴라의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보러 구치소에 면회를 간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어디 아프신 데는요?”

“응 괜찮아, 여기 있으니까 할 일도 없고, 밥만 축내는구나! 내 걱정은 하지 말아, 그리고 그 일수 갚지 말아, 비싼 선이자 떼고 좀 늦었다고 이자 무진장 늘어나고 원금은 여태껏 다 갚은 거나 진배없구먼, 나를 구속시켜? 갚지 마 내가 여기서 얼마간 지내면 되니까”

퀴라의 아버지는 사채가 무섭다며 갚을 생각 하지 말라며 몸으로 대신 때우신다고 화를 내시다 먼저 들어가셨다.

없는 살림에 퀴라의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닭고기 사식을 넣어주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퀴라와 퀴라의 어머니는 아무 말도 없이 버스안 창밖만 바라다보며 서로 모른 채 눈물만 글썽이고 있었다. 그리고 뜨거운 햇살아래 무심한 태양이 너무도 미웠을 뿐이었다.

주말... 퀴라는 그렇게 우울한 주말이 싫었다. 다시 가게문을 열고 장사를 시작하려는 엄마를 도와 드리며 식탁 위에 올려져 있는 의자도 내리고 식탁과 의자도 닦았다. 그리고 얼마 후 손님이 들어온다.

“소주 한 병요”

대낯부터 소주 한 병만 주문한다. 화가 난다. 하지만 퀴라의 어머니는 웃으시며 소주 한 병과 김치 한 그릇을 들고 다가가신다.

“맛있게 드셔요 그런데 안주 없이 소주 만드시면 속 버리는데... 우리 오늘아침 먹었던 배춧국이라도 드릴까유?”

“그럼 좋지요”

퀴라의 어머니는 속도 좋으시다. 아침에 남은 배춧국을 한 사발 갖다 드리며 천천히 드시다 가라고 하셨다.

퀴라는 퀴라어머니의 모습에 화가 나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가게 안에 딸린 작은 조립식 방안에 작은 티브이가 하나 있다. 티브이를 켰지만 퀴라는 불안했다.

“공부해야 하는데, 그래야 나도 대학 가는데...”

퀴라는 영어단어장을 손에 들고 시선은 멍하니 티브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책가방 속 샤프연필을 찾으려다 무언가를 발견한다.

꼬깃꼬깃한 편지봉투.

퀴라는 윤석에게 편지를 부치지 못했다. 빨간 우체통 앞에서 망설이다 그냥 들고 온 편지봉투였다. 책가방 바닥에 깔려 너덜너덜해진 편지를 퀴라는 더욱더 구겨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래 난 더 좋은 남자 만날 수 있어! 내 상처를 드러내주는 남자를 만나면 나만 손해지, 그래 잊자! 나도 대학 가서 더 좋은 남자 만나서 행복해질 거야”

퀴라는 더 이상 윤석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 대학입학을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퀴라의 머릿속은 상처로부터 조금씩 조금씩 비워져 갔다.


“현주야? 오늘 영어선생님 봤어?”

“아니 왜?”

“영어선생님 학교 그만두셨대”

“정말? 왜? “

등교하자마자 퀴라에게 들려오는 소리는 영어선생님에 대한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그 소식에 퀴라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나마 영어선생님 덕분에 영어공부에 흥미를 가져 보려 했는데 왜? 왜?”

퀴라는 너무 궁금해졌다.

“미자야? 영어선생님에 대해 알아봐 줘! 왜 그만두시는지”

“그래 알아볼게”

퀴라의 소식통인 미자는 여기저기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강희야? 너네 담임선생님 왜 그만두시니?”

“이건 비밀인데.... 아마도, 다른 선생님과 싸우셨나 봐!”

“뭐? 그렇다고 그만두셔?”

“너 그 팔뚝 문신 못 봤어? 착해 보이시는데 그 문신 때문에 다들 더 나쁜 사람으로 보나 봐.... 그래서 그런 것 같아...”

“너는 담임선생님인데 그런 소문을 믿니? 아닐 거야 그럴 리 없어...”

미자는 이런 소문들이 사실이 아니라며 퀴라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하지만 소문이란 것이 나쁠수록 더욱더 빨리 퍼지듯 영어선생님 소문도 그랬을 것이다.

"현주야? 넌 안 믿지? 그 소문“

“그럼 난 안 믿어.... 어쩌지 미자야? 영어 선생님 전화번호도 알아봐 줄 수 있니?”

“그거야 뭐 쉬운 일이지...”

“그래 고마워”

퀴라는 영어선생님의 집 전화번호를 수첩에 적고 주말이 되기를 기다렸다.

“띠리링... 띠리링,,,,”

“여보세요?”

“아... 선생님? 저, 저는 1학년 3반 현주인데요”

“어! 그래! 현주가 어쩐 일이야?”

“선생님? 선생님....”

퀴라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울먹였다.

“왜? 무슨 일 있어?”

“선생님! 선생님! 왜 그만두세요? 저 이제 영어공부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요”

“하하하하하.... 그래? 그럼 열심히 해야지! 선생님이 현주 공부 열심히 하라고 빌어줄게”

“그런데 왜 그만두시는 건데요?”

“아... 벌써 알았어? 그건 말이야, 내가 공부하러 외국에 나간단다. 그래서 그만두게 된 거야”

“정말요?”

“그래, 선생님 공부 더 하고 와서 멋진 선생님 될 테니까 그때까지 현주도 열심히 공부해서 멋진 사람으로 만나자!”

“정말이세요? 그럼 그 소문 사실이 아닌 거죠?”

“하하하하 하하하하 소문! 내소문이 있어? 무슨 소문인데?”

“아... 아뇨, 다행이네요... 선생님도 잘 지내시고요. 그리고 꼭 빨리 돌아오셔야 해요!”

“그래! 현주도 잘 지내고 있고, 수업시간에 딴생각하지 말고 알았지? 하하하하”

"네... 헤헤헤”

보이지 않는 전화통화였지만 퀴라의 얼굴은 금세 벌겋게 달아올라 멋쩍은 웃음소리만 낼 뿐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숨을 내쉬며 잠시 공중전화박스에 서 있었다.

퀴라는 영어선생님과의 전화통화를 한 후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 그리고 학교에 가서 여기저기 소문이 아닌 진실을 알려주기로 마음먹었다.

“어떻게 하면 금방 다시 소문이 날까? 친구들 한 명 한 명 붙잡고 말해? 아니지.... 그러면 너무 오래 걸려, 아하! 그래 용선이, 경미.”

퀴라는 좋은 생각이라며 박수를 치며 선생님의 오해를 풀기 위해 우선 말 많고 귀가 얇은 친구들에게 먼저 사실을 이야기해 주었다.

역시나 소문, 아니 진실은 정말로 빠르게 퍼져나갔고 그 소문 즉 거짓 소문은 점점 지워져 갔다.

“현주야? 너 대단해!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났어?”미자는 늘 얌전하던 퀴라가 소문을 잠재우고 진실을 알리는데 한몫을 한 퀴라의 용기에 감탄을 하며 바짝 다가와 물었다.

“음.... 나는 말이야... 너무 궁금한 건 못 참거든... 하하하하”

퀴라와 미자는 매일 만나고 하루를 같이 살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듯 그렇게 여고시절 초입은 지나가고 이제 중반인 2학년이 되고 있었다.


“현주야? 너 몇 반이야? 빨리 말해”

“나 7반... 너는?”

“아이고, 나도 너 따라서 이과 왔는데... 난 9반이다... 하필이면 옆반도 아니고 건너반이냐... 우리 붙여달라고 떼써볼까?”

“안되지... 그냥 우리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교 같이 가자”

“그래! 맞다 같은 대학교 같은 과 가면 늘 만나지? 이히히히”

“그래! 좋아”

미자와 퀴라는 남은 2년간의 여고시절을 힘 다해 열심히 공부하자고 다짐하며 다음에 다시 만날 날을 위해 조금 떨어져 있는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1교시 수업이 끝나는 알림 종이 울리자마자 미자는 후다닥 계단을 내려와 7반에 있는 퀴라의 반에 찾아가 수다를 떤다.

“우리 담임이 글쎄 뭐라는 줄 알아? 아니 글쎄 점심시간에도 공부하래”

“그래? 그건 너무 한다. 우리도 사람인데...”

“그렇지? 우리 어쩌냐? 점심시간에도 만나지도 못하고”

퀴라와 미자는 수다를 떨다 보니 화장실 갈 새도 없이 금세 2교시 수업종이 울리고 둘은 또 헤어져야만 했다. 하지만 쉬는 시간 점심시간 그렇게 서로 왔다 갔다 만났던 둘의 만남도 수다도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체육시간이 되면 옷 갈아입기, 음악시간 되면 음악실 가기, 또 화장실도 가야 하고, 숙제, 밀린 단어 외우기 등등 쉬는 시간을 이용하는 일들이 많이 늘어났고 점심시간에도 단어장 들고 공부하라는 담임선생님 말씀에 둘은 화장실에서 우연히 만나야만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에이, 오랜만에 만나는군!”뿌루퉁해진 미자는 퀴라를 보자마자 반가운 내색보다는 짜증이 섞인 표정으로 말을 했다.

“하하하하 그래, 맞아, 하지만 우리 오래 만날 수 있는 날들을 위해 참자”

퀴라와 미자는 둘만의 행복하고 오랜 만남 시간을 위해 지금 순간의 행복을 접어두고 열심히 공부하기로 했다.


이전 08화퀴라의 전성기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