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함과 용기
11월 27일 첫눈이 내린다.
엄청 내린다.
함박눈이다.
예전 같으면 이런 날에는 그리운 사람이 생각나서 추억을 생각하며 그 사람들을 그리워할 텐데.....
오늘은 그리워하는 것도 한없이 우울하다.
시린 마음속에 생채기가 하나 더해진 오늘 내리는 함박눈을 바라보며 나도 함박눈 속 하나의 눈송이가 되어
바닥에 떨구어져 녹아버리던지 쌓여 누군가가 밟고 지나가는 듯 아프다.
얼마 전부터 아니 올해 초부터였을지도 모른다. 동료로부터 급하게 필요하다며 빌려달라는 돈.....
갚지 않을 사람이 아니었기에, 또한 넉넉한 사람이었기에 나는 덥석 빚까지 내서 빌려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 수렁 속에 빠지고 말았다.
여러 차례 사탕발림으로 빌려간 돈이 내전재산에 노후자금에 카드빚까지 생겼다.
미쳤다.
정신 차리고 보니 빈털터리 빚쟁이가 되어있었다.
다시 정신 차리고 내 몸 아프기 전에 열심히 일하자고 마음먹고 살기에는 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다.
캄캄하다.
"함박눈이 오는데 첫사랑 생각하면서 오늘 감성에 빠져보자고요. 커피 한잔해요" 라며 다른 날보다 더 업된 듯 동료가 말을 걸어온다.
"네..... 그런데 예전 같지 않게 그냥 저 눈이 우울해 보이네요. 아름다움을 뽐낼 새도 없이 바로 녹아버리잖아요....."
".............."
멍하니 종일 내리는 함박눈을 바라본다.
내 옆에 살포시 다가와 지켜보는 우리 고양이가 나의 손등을 핥아주며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위로하는듯하다.
지금 이 순간 평온할 수도 어떤 용기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는 용기, 그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