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대피훈련

by 사탕볼

"오늘은 지진대피훈련을 하는 날이에요. 사이렌이..."

"선생님, 진짜 지진 나요?"

"언제 나요?"

말 좀 하게 허락해 주겠니?

"설명해 줄게요. 진짜로 지진이 나는 건 아니고 지진이 났다 생각하고 대피하는 훈련을 하는 거예요."

"에이~ 진짜 나면 좋은데."

철없는 소리. 그래. 지금 철이 없어야지 더 커서 없으면 어쩌겠니.

연우는 1학년이 해야 하는(?) 아무 말을 한다.

"진짜 나면 큰 일 나요. 집이 없어질 수도 있고 사람이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어요."

"야.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어른 같은 서은이가 날 거든다. 아니 자기도 한 마디 하고 싶었는데 타이밍을 잘 잡았다. ㅎㅎㅎ


먼저 영상을 보며 지진에 대해 배운다.

"선생님, 저거 실제예요?"

"실제 장면도 있고 연출된 장면도 있어요. 이 부분은 실제입니다."

"와~ 마트 물건 다 떨어진다."

아이들 눈에는 신나는 구경이다.

영상 교육만으로도 이렇게 들떠있는데 아이들을 어떻게 진정시킨담.

교장선생님의 당부 말씀이 아이들이 장난처럼 하지 않도록 하라고 하셨는데 큰 일이다.

지난번 훈련 때 아이들이 운동장에 대피하는 모습이 놀러 나오는 모습 같다고 훈련에 진지하게 임해야겠다고 하셨다.

1학년 담임은 괜히 찔린다. 신나서 뛰쳐나가는 건 1학년이 1등이지...


어느 영화감독이 말한 것이 떠오른다.

좀비 영화를 찍는데 아역배우를 써서 어린이 좀비를 연출하려고 아무리 좀비 표정, 동작을 연습을 시켜도 아이들은 뛰기면 하면 웃어서 쓸 수가 없었다고.

그렇다. 아이들은 뛰면 그냥 웃는다. 그것도 악~~ 소리를 크게 내면서 올림픽 금메달 딴 표정으로 뛴다.


"여러분 지진대피훈련은 국어, 수학 공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해요. 생명을 지키는 방법이니까 무엇보다 중요해요. 지금부터 설명을 잘 들으면 혹시 집에서 지진이 났을 때 엄마, 아빠의 생명까지 여러분이 구할 수 있는 거예요. 우리가 어벤저스가 되는 거예요."

이 정도 MSG는 쳐줘야 아이들을 꼬실 수 있다.

"사이렌이 울리는 동안은 땅이 크게 흔들리는 거예요. 그럴 땐 어떻게 한다고 했지요?"

"책상 밑에 들어가야 된다고 했어요."

"맞아요. 사이렌이 울리면 바로 책상 아래로 들어가서 머리를 보호하세요."

엥~~~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이렌이 울린다.

아이들에게 그리 정숙히 움직이라 했건만 소리를 지르며 책상 밑에 들어가 깔깔 웃는다.

"어? 누가 웃어? 지금 지진 일어나서 위험한 상황이에요. 흔들릴 동안은 책상 밑에 몸을 낮추고 있어야 해요."

"선생님."

"지진 멈출 때까지 가만있어야 되는데~."

"아니오. 선생님은 왜 안 숨어요?"

맞네. 나도 숨어야 되는구나.


몇 해 전 우리 지역에 학교 일과 중에 지진이 일어나서 아이들이 실제 대피하는 일이 있었다.

땅이 흔들흔들거리고 창틀이 덜컹거렸다. 실제 겪으니 심장이 쿵쿵 뛰고 정신이 없었다.

교무실에 있던 나는 급히 교내 방송을 했다. 다행히 전기는 끊어지지 않았다.

"현재 지진이 발생하였습니다. 학생들은 모두 운동장으로 안전히 대피하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립니다. 학생들은 모두 운동장으로 대피합니다."

방송을 하며 창밖으로 운동장을 내다보는데 아이들과 교사들 모두 총알같이 운동장에 나와 있었다. 교사는 놀란 아이들을 진정시키며 아이 숫자를 세고 있었다.

이런! 나만 건물 안에 있잖아.

실제 지진 경험이 있어서 지진대피훈련이 우습게 느껴질 수 없는 볼선생이다.


사이렌 소리가 그친 후 아이들에게 아주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머리 위에 가방을 올리고 실내화를 신은 채로 선생님을 따라 나옵니다. 절대 뛰거나 장난치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잘 배워야 가족을 살릴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약발이 먹혔는지 내 뒤를 따라 졸졸 한 줄로 따라 나온다.

우리 반이 서야 하는 자리에 한 줄로 서고 볼선생은 아이들 숫자를 확인한다.

노란 잠바를 입으신 교육장님이 우리 반 옆에 계신다. 교육지원청 길 건너에 있는 학교다 보니 행사가 있으면 잘 오신다.

교육장님이 갑자기 우리 반 젤 얌전이에게 질문을 하신다.

"머리에 가방은 왜 쓰고 나왔어요?"

"..........."

에고... 낯선 사람의 질문에 대답을 할 리가 없는 어린이를 골라서 물으시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얌전이가 대답한다.

"머리를 보호하려고요."

교육장님과 교장선생님이 똑똑하다고 칭찬을 해주신다.

휴~~~ 애가 그거 대답 못 한다고 큰 일 나는 것도 아닌데 괜히 쫄아있는 볼선생이 우습다.

"선생님."

승아가 속삭이듯 나를 부른다.

"왜?"

"우리 다 살아있는 거 맞죠?"

하하하하하하하

우리 훈련 잘했지요?라는 말을 1학년스럽게 한다.

"어. 다 살았어. 너희들이 잘 따라 나와서 선생님도 안 죽고 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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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어느 학교에 큰 불이 난 일이 있었다.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모두 안전히 대피를 했다고 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왕좌왕하지 않고 신속히 대피하였다는 말에 역시 평소 훈련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훈련 왜 이렇게 자주 하나 툴툴거리기도 했는데 이제 그런 말이 쑥 들어간다.

귀한 아이들아, 어떤 상황에도 너희 안전과 생명이 제일 중요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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