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선생, 이리 와서 전화 함 받아봐라."
교무실에서 교무 선생님이 수화기를 들고 나를 부르신다.
나한테 누가 학교로 전화를 할까 생각하며 전화를 받아 든다.
"네. 00 초등학교 교사 사탕볼입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고성이 수화기를 뚫고 나온다.
"공문을 이따위로 보내는 선생이 어딨어? 이걸 공문이라고 보낸 거야? 어?~~~~"
그 뒤로 한참 수화기 밖으로 소리가 흘러나오지만 귀에서 떼고 듣지 않는다.
나이스 시스템이 전국에 정착되기 전. 그러니까 2000년대 초반 학교별로 사용하는 시스템이 달랐다.
CS, SA, NEIS(나이스) 세 시스템이 뒤섞여서 운영되는 기이한 형태.
학생수 1800명이 넘는 볼선생의 학교는 3월 첫날 30명이 전학 가고 30명이 전학 오는 학교였다.
그 정신없는 학교 학적 담당을 맡고 있던 볼선생.
어느 날 나이스로 통합한다고 이전에 빠진 내용을 찾아내라고 전학 간 학생들의 학교에서 공문이 쏟아져왔다.
그 시기에 사실 볼선생은 여교사의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인 자연유산으로 병가 중이었다. (그때는 유산휴가라는 것이 없었다. 요즘은 임신기간에 따라 휴가가 주어진다.)
교무 선생님이 전화를 하셔서 학교에 일이 생겼으니 수업은 안 해도 되니까 와서 일만 좀 처리해 달라고 하셔서 학교에 가본 볼선생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책상 위에 책 한 권 두께로 공문이 쌓여있었다.
1996년 7월 2일 2학년 김00 학생의 병결 사유가 누락되었으므로 찾아서 보내달라.
1990년 3학년 이00 학생의 2학년 건강기록부 키가 누락되었으므로 찾아서 보내달라.
이런 내용으로 공문이 산더미인 것이다.
눈이 뒤집힌 볼선생.
컴퓨터를 켜고 한글을 열어 공문 양식에 또박또박 친다.
제목: 생활기록부 기재 누락 회신
1. 귀교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2. 귀교에서 요청하신 자료가 본교에 없음을 알립니다. 끝.
수신기관에는 쌓여있는 공문 발신 학교를 차례차례 입력한다. 수십 개의 학교 이름을 다 적으니 수신자란이 넘치려고 한다.
이렇게 작성한 공문을 출력해 교무선생님 앞에 들고 간다.
할 말이 많으나 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싸인을 하신다.
옆에 앉으신 교감 선생님께 바로 들고 간다.
교감 선생님은 내가 출근할 때부터 미안하다고 몇 번을 이야기하시며 나를 걱정하셨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싸인을 해주신다.
두 분의 싸인을 받은 공문을 들고 교장실로 간다.
똑똑 노크를 하고 교장실에 들어선 볼선생을 보고 교장선생님이 깜짝 놀라신다.
"안 쉬고 왜 나왔노?"
유산하고 교장선생님이 걱정이 많으셨다.
"공문이 많다고 연락이 와서 나왔습니다."
"뭐 급한 일이라고 몸도 안 좋은 사람 나오라캤노?"
결재판을 열어 교장선생님께 보여드린다.
아마 교장선생님도 많이 당황하셨으리라.
공문의 내용이 누가 봐도 [아픈 사람 불러서 짜증 많이 남. 배 쨀라면 배 째]이다.
교장선생님은 쿨하게 싸인을 해주신다.
"이거 찾지도 못한다. 잘했다."
교장선생님까지 싸인을 받은 그 공문을 팩스로 각 학교 팩스번호를 다 찾아내서 보낸다.
그렇게 일을 처리하고 병가를 끝낸 볼선생이 전화를 받은 것이다.
온갖 험한 말을 하는 부산에 어느 학교 교무라는 사람에게 한 마디를 하고 전화를 돌린다.
"교장선생님 결재를 받아 발송한 외부공문이오니 교장실로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교장선생님은 그날의 일을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으셨다.
어쩌면 그쪽에서 놀라서 끊고 연결이 안 됐을 수도 있다.
볼선생은 옛날부터 간이 컸다.
지금도 늘 후배들에게 해주는 조언이 있다.
욕은 배 뚫고 안 들어온다.
이후 다른 수신학교에서 전화가 더 왔다.
"정말 자료가 없을까요? 한 번만 더 찾아봐 주시면 안 될까요?"
이런 학교에는 금방 자료를 찾아드린다.
"7월 2일 하루 결석했나요? 병결이지요? 사유가 없다는 말씀이시죠? 사유는 감기입니다."
"2학년 때 키가 없다는 말씀이시죠? 1학년 때 키가 얼마인가요? 128cm... 3학년 때는요? 140cm.... 아. 2학년 때 키 있습니다. 134cm입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
날 잡아가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