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어려워

by 사탕볼

"주사위 한 번 볼까? 평소에 우리가 보던 주사위랑 다르죠?"

"네. 점이 없고 글자가 있어요."

"교과서에 있는 징검다리 게임을 이 주사위로 다 같이 해볼 건데 재미있겠지요?"

"네!!!!"


교과서에 있는 게임룰은 짝과 함께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쌍받침을 제대로 적고 말을 한 칸 옮기는 방식이다. 애초에 정확하게 쌍받침을 모르면 무조건 지는 게임.

우리 반 짝 구성을 살펴보면 이길 사람이 게임을 하기도 전에 다 보인다.

이런 게임은 재미도 없고 교육효과도 없다. 아는 애들만 신나는 게임.

모르는 아이들이 이 게임을 통해 알아가야 수업이다.


"선생님이 먼저 시범을 보일게요. 첫 번째 징검다리에 나온 문장을 다 같이 맞춰 봅시다. 책을?"

"읽다!"

"읽다 할 때는 이 밑에 쌍받침 무엇을 써야 하지요?"

아는 아이들이 먼저 빨리 대답한다.

"리을 기역이요!"

"맞아요. 선생님이 주사위를 던져서 리을 기역이 나오면 우리 반이 다 같이 한 칸 나가는 거예요. 책을 읽다 할 때 쌍받침 뭐가 나와야 한다고?"

"리을 기역!"

"자~ 리을 기역 나오는지 보자~."

보기 좋게 틀린 글자가 나온다.

"에구 선생님은 잘못 나왔네. 다음 친구가 나와서 책을 읽다를 완성해 주세요. 룰렛으로 다음 친구 정해봅시다."

컴퓨터 룰렛으로 돌려서 번호가 나온 친구가 주사위를 던진다.

다 같이 리을 기역이 나오도록 응원을 한다.

"와~~~ 리을 기역 나왔다!"

"책을 읽다가 완성되었어요. 자기 게임판에 책을 이다를 읽다로 제대로 써주세요. 책을 읽다에 들어가는 쌍받침은 뭐라고?"

"리을 기역!"

한 칸 한 칸 힘겹게 나아가서 한 시간 만에 겨우 징검다리를 다 건넌다.


종이 울리고 쉬는 시간이다.

글자를 잘 모르는 민준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다가와서 말을 붙인다.

"선생님, 이 책 이상해요."

"왜?"

손으로 '책을 읽다' 돌을 가리키며 말한다.

"여기서 시작하면 밑으로 밑으로 가면 빠른데 왜 이렇게 돌아가요?"

하하하하하하하

"맞네. 같이 읽어보자. 책을 읽다, 팔뚝이 굵다, 물건값을 치르다, 불빛이 밝다 이 순서로 가면 될 걸 책이 잘못했네."

아직 완전히 글자를 몰라도 어른이 되어 살아갈 걱정이 하나도 안 되는 민준이.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서현이가 다가온다.

민준이의 엉뚱한 문제 제기에 대해 한 마디 하려고 하나....

"선생님, 그런데요 첫 번째 책을 읽다는 답이 두 개인 거 아니에요?"

"어?"

"책을 잃을 수도 있잖아요."

아!!!

주사위에 ㅀ도 있구나. 생각도 못했다.

당연히 책을 읽다라고만 생각했지 잃다는 정답지에 올라있지도 않았다.

"맞네. ㅀ이 들어가도 말이 되는구나. 서현이 참 세심하게 잘 찾았네."


교과서 만드신 분들도 아마 생각 못했을 것이다.

1학년 짜리의 놀라운 통찰력이란...

어른들은 고정관념이 있어서 백이면 백 책을 읽다라고 대답한다.

아이에게 또 배운다.


그런데 왜 이렇게 힘든 거지...

1교시 한 시간 수업을 했을 뿐인데 맥이 풀린다.

시계를 보니 걸음수에 3300보를 걸었다고 나온다.

아이들 주사위 던진 거 주워오고 룰렛 돌리러 컴퓨터 만지러 가고 아이들 게임판에 잘 적는지 보러 다니고 어지간히 동동거리고 다녔구나.

아이고. 다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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