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선생님께서 메신저를 보내셨다.
토마토 화분이 아주 많이 남았으니 선착순으로 필요한 반 들고 가라고 하신다.
선착순! 볼선생이 가장 자신 있는 분야지.
선착순으로 뭐 걸고 하면 학교에서 다들 그냥 볼선생한테 주라고 한다. 하하하하하하하하
학교 다닐 때 공부에 이렇게 목숨을 걸었으면.... 쩝.
어쨌든.
"여러분 오늘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서 선생님과 공부했지요?"
"네!"
"토마토 씨앗과 화분을 선생님이 하나씩 나누어줄게요. 집에 가서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햇빛도 보여주며 정성껏 길러보세요. 식물도 생명이니까 여러분이 사랑해 주면 더 잘 클 거예요."
토마토 선물을 받은 아이들은 기분이 좋아서 화분에 쓰여있는 글자를 하나하나 읽어본다.
"선생님! 제 토마토 새싹이 나왔어요!"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책가방을 던지고 내게 뛰어와서 기쁜 소식을 전한다.
며칠 동안 아이들이 하나하나 싹이 올라왔다는 말을 하며 자기 토마토 자랑에 서로 열을 올린다.
"내 토마토는 이~만하거든."
아무리 봐도 그건 새싹이 아닌데... 30cm는 넘어 보이는 길이를 말하는 재우.
자기 토마토 자랑을 하는 아이들이 하나둘 우리 반 토마토에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고 교실에 2개를 함께 키우고 있다.
"얘도 많이 컸다. 어? 얘는 두 개 나왔어."
"어~ 선생님이 있다가 하나 뽑을 거야."
"안 돼요! 얘도 생명이잖아요."
할 말이 없다. 그 애를 솎아줘야 옆에 좀 더 튼실한 토마토가 열매를 잘 맺지만...
뭐 꼭 열매를 맺어야만 토마토인가? 안 맺을 수도 있지. 그럼.
"그래. 안 뽑을게. 수연이가 진짜 토마토 사랑하는구나."
우리가 수학 공부를 할 때도 노래를 부를 때도 늘 교실에서 우리와 함께 하는 토마토.
우리 반 반려 토마토가 되어 아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란다.
어느덧 여름방학.
방학식날 통지표 나누어주고 교실 정리하고 일찍 조퇴해서 가는 아이 챙기고 하느라 정신이 없던 볼선생이 퇴근하며 토마토를 교실에 두고 그냥 나왔다.
우리 교실은 통유리창으로 되어 외부 열기가 그대로 전달되는 아주 뜨거운 교실이다.
그 창가에서 토마토가 금, 토, 일 사흘을 지냈다.
월요일 아침. 아이도 없는 학교에 새벽같이 출근한 볼선생은 토마토를 보고 좌절했다.
아주 데쳐진 시금치처럼 축 늘어진 것이 살아날 가망이 없어 보인다.
에어컨이 있는 곳으로 환자를 옮기고 물을 주고 상태를 살핀다.
식물은 심폐소생술을 어떻게 하는 거지... 링거라도 꽂아주고 싶은데... 아.... 절망이다.
조심해서 집으로 데리고 온 토마토는 다음 날 회복의 기미를 보인다. 여름방학 동안 베란다에 내놓았다가 너무 더운 날은 에어컨 바람을 쐬어주며 극진히 보살피는 볼선생.
개학날 아이들이 우리 교실 토마토를 보고 놀란다.
"어? 안 죽었네. 우리 집 토마토는 죽었는데..."
"나도...."
자기 토마토가 죽은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우리 반 토마토가 큰 보물이 되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 추석.
추석이 되어도 더위는 가실 기미가 없고 물도 주고 해야 해서 연휴를 앞두고 제일 먼저 토마토를 챙긴다.
추석날 아침에도 차례 지내러 가까운 시댁에 가기 전에 토마토 물부터 준다.
조상님보다 토마토 ㅎㅎㅎ
그렇게 정성을 들인 토마토가 드디어 꽃이 피었다.
어서 마지막 연휴가 지나서 아이들에게 이 꽃을 보여주고 싶다.
토마토 열매가 아이 수만큼 열려서 예쁜 입에 하나씩 넣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토마토야. 우리 반 아이들 누구누구인지 다 봤지?
하나씩 먹게 열심히 열매 맺어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