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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캔디D Oct 07. 2021

혼자, 이사를 했다

2021년 9월 16일


수년 전, 혼자 사는 것이 지겨울 즈음 친구가 급하게 집을 구할 일이 생겼다. 적당한 가까움과 상황 등이 맞아 고민을 해볼까 싶었는데, 점을 보러 갔다가 “친구가 욕하고 나간다”며 같이 살지 말라는 조언을 받았다. ㅎ


내가 생각해도 나는 같이 살기 쉬운 사람&조건은 아닐 듯하여 그 이후에는 사실 좀 포기를 했다.


그리고 력사와 아주 오랜만에 24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부지런하고 깔끔하고 바깥으로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력사와 정리와 청결에 아주 취약하고 집에 처박히는 걸 좋아하는 나 사이엔 간극이 엄청 컸다. 


안 그래도 력사가 청결한데 몸까지 안 좋았던 터라 몇 주 몇 달씩 함께 지내며 력사가 원하는 수준까지 지켜줄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생각보다 우리는 잘 지냈다.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둘이 동거한 시간은 몇 달뿐이었고, 그때는 괜찮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도 생각했었는데,


우리는 잘 지냈다. 계속 이렇게 투닥거리며 잘 지낼 것이라는 새삼스러운 확신도 들었다.


그리고 이젠 정말 같이 살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력사는 회사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고, 서울에서 평온하고 안전하게, 친구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 도래했던 것이다.


그래서 력사가 ‘그나마’ 제주 집을 정리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였을 때, 은평에 다른 집들을 알아봐야겠다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사실 력사가 퇴원하고 돌아올 편안한 집을 갖고 싶어서였기도 했다. (물론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하던 그 시점엔 내가 혼자 살 집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고 받아들였던 대로, 혼자 이사를 했다.


6월 초에 집 계약을 하고 돌아갔던 날, 차마 미안해 력사한테는 말을 하지도 못했었다. 아마 거동을 아예 못하게 되었던 즈음이었을 거다.


여튼, 이사를 했다. 


제주 집과 서울 집 짐을 합쳤고, 집은 좀 더 쾌적해졌다. 여전히 엘리베이터는 없지만, 그래도 4층은 아니니까 좀 더 낫다고 볼 수 있다. 


드디어 정리가 된 집에서 서재에 앉아 일을 하다가 책상에 올려둔 력사 사진에 눈이 머물렀다.


어젯밤엔 오랜만에 소리 내어 네가 보고 싶다 불러보았다. 내일이면 벌써 력사가 떠난 지 100일째 되는 날이다.


너의 소파에 누워 너랑 티키타카 하던 순간을 떠올린다. 이 집에 지금 부족한 건 정말, 너 하나뿐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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