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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 Aug 08. 2020

사물 쓰기, 12. 콘택트렌즈

제 안경이 거슬리시나요

오랜만에 아침 일찍 렌즈를 끼고 집에 나섰다. 지방에 약속이 있어 가방을 싸고 좋아하는 옷을 챙겨 입고 안경은 가방  안경집에 모셔서 가지고 나왔다. 하루 자고 올라오니까 렌즈 통도 렌즈 세척액도 당연히 챙겨 나오는 보부상이다.

렌즈는 내게 좋으면서도 싫은 물건이다. (안경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하지만) 렌즈를 끼면 으레 그렇듯 사람들의 반응은 확연히 달라진다. 기분에 따라 화장을 하고 안경을 쓰고 나가는 날도 있는데, 화장을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화장을  하고 렌즈를 끼고 나가면? 사람들이 오늘 웬일로 화장했냐고 물어본다. 저는 오늘 어떤 색조 화장품도 사용하지 않았는데요. 안경 끼는 게 이렇게까지(?) 사람들에게 착시를 주는 걸까.

아니, 그보다 다들 안경   얼굴에 뭔가 판단을 하고 있었다 이거지?!


 나는 너를 만나서

안경은 10 때부터 썼는데, 렌즈는 17살 때부터 썼다. 17  학교 치어리더를 했었더랬다. 특성상 춤을 추면서 안경을 쓰기에는 여러 모로 곤란하여 어쩔  없이 렌즈를 끼게 되었다. 사실 이때의 기억은 내게 정말 싫은 기억이라 학교 이야기를 백일 글쓰기의 어떤 글에도 꺼내고 싶지 않지만 렌즈를 끼게  명확한 계기는 이랬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아마 20살이 넘어서나 껴봤을  같다.

껴보니 편하긴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안경이  미모(ㅋㅋ) 가리는 게 아깝다는 주변의 반응에 못 이기는  렌즈를 끼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안경  여자들은 미추에 상관없이 항상 이런 소리를 듣는다.

 안경 벗으면 훨씬 예쁠 텐데


명확한 계기라고는 하지만, 이런 말들에 호도되어 렌즈를 착용하게 되었다는 것만큼은 부정할  없다.

니들이 뭔데!!

안경이 불편한 이유? 수도 없이 읊을  있지.

안경을 쓰고 춤을 추면 안경이 날아갈  있다.

겨울에 안경을 쓰면 김이 서려서 더럽게 불편하다.

여름에 선글라스라도 끼려면 도수가 들어간걸 따로 챙기거나 시야를 포기하거나 렌즈를 껴야만 한다.

어디서 잠이라도 들라치면 안경이 걸리적거리거나 콧등을 눌러서 아프고 자다가 부러뜨리기 십상이라 졸려서 쓰러져도 안경은 벗어두어야 한다.
 외에 등등등. 걸리적거리고 불편한  투성이인 게 안경이다.


그래, 이런 이유들로(또는 이보다  중요한 이유들로) 사람들이 라식, 라섹, 렌즈를 활용하긴 한다.

그런데 난... 안경 벗기를 꾸준히 요구받은 여자였다. 그리고  반항적인 천성을 타고났다. 선생님에게 불려 가   맞을지언정 안경 뒤의  눈깔을 뒤집어 까는걸 참지는 않고 살았다. 안경을 벗고  예쁜 모습으로 다녀라.  요구에 나는 작게나마 반항하는 중이다.

어쩌라고.  하는데  예뻐야 돼.

그래서 렌즈를 끼고 회사에 가는 날은 반차 쓰고 놀러 가는 날뿐이다.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은 그냥 안경을 쓰고 간다. 어쨌든 9시간 동안 일을 해야 하니까. 일을 많이 해야 하는 날인데 저녁에 두세 시간 예쁘자고 안경을 쓰고 일할 수는 없다. 렌즈는 그래서 내가 원하는 얼굴을 실현시켜주지만 남의 욕구에 순응하는 기분을 떨칠  없다. 탈코르셋 이슈와도 맞닿아있는 부분일 테지.


그런 마음으로 렌즈를 끼고 나간다.  미적 기준을 위해 도구를 사용했지만  안경과 언제나 함께야.

아엠    포스   포스 이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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