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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 Oct 25. 2020

꽃꽂이에 대한 소회

꽃은 근성으로 상대하라

죽도록 일만 하는 아싸 답지 않게, 나는 회사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꽃꽂이 동아리. 회사 사람들과 돈을 모아 정기적으로 플로리스트 선생님의 강습을 받는다. 회사 지원금도 조금은 나와서, 시중에서보다 싼 가격에 꽃을 접하고 있다. 회사에서 꽃으로 온갖 활동을 하고 재료가 남으면 집에 가져온다. 꽃을 좋아하는 엄마는 종종 내가 만든 꽃다발을 풀어서 재구성을 한다. 며칠간 집이 화사해지고, 꽃이 없을 때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꽃시장에서


얼마 전에는 친구들과 시간을 내서 꽃시장에 잠깐 다녀왔다. 친구 한 명이 꿈에 물망초가 나왔다며 물망초를 사야겠다더라. 딱히 사려고 한 꽃은 없었지만 맘에 쏙 드는 꽃이 있으면 뭐라도 사서 빈 물병에 꽂아둘 심산으로 나섰다. 작은 규모의 꽃 골목(?)은 종종 다녀봤지만, '꽃 시장'이라 부를만한 곳을 가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은근히 설레기도 하고, 좋아하는 친구들과 꽃을 보러 다니는 것은 좋았으나 꽃 시장은 생각보다 어려운 공간이었다.

마음에 드는 꽃을 찾고, 그 꽃과 어울리는 다른 꽃을 찾는 어려움은 일차적일 뿐이다. 꽃의 상태, 꽃의 가격을 살펴야 한다. 거기다 상인과의 흥정(또는 기싸움)과 옮기는 수고까지. 꽃이 쉬워 보이는 것과 달리  어렵다. 친구는 아는 사람들과 와서 돈을 모아 여러 종류를 사고 나눈다고 하더라. 오늘은 우리 모두 딱히 사들고 오고 싶은 꽃이 없어 그냥 돌아 나왔다. (아쉽게도 물망초도 없었다) 나와 달리 술꾼인 내 친구들은 꽃 대신 분홍색 병의 술을 세 병이나 샀다. 그 술은 제주도에 가져가서 야무지게 마셨다.


강한 자만이 꽃을 잡을 수 있다

꽃은 으레 여린 사람이 좋아하고 어울린다고들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약 1년간 경험해본 꽃꽂이는 전혀 그런 활동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체력이 많이 필요하다. 때로는 내 몸집만 한 꽃을 들고 이리저리 옮겨야 한다. 꽃을 펼쳐서 자르고 가시를 솎아내다 보면 버리는 잎과 줄기가 또 내 몸집만큼 나온다. 이 짓거리를 컨디셔닝이라고 부른다. 컨디셔닝을 어느 정도 하고 나서 꽃의 위치를 잡기 시작한다.      


컨디셔닝 전의 꽃들


어떤 것을 만드냐에 따라 다르지만 내 선생님은 우선 스스로 맘에 드는 중심을 잡고,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며 입체감을 살리는 것을 강조하신다. 스파이럴식 꽃다발은 너무나 힘들다. 누구나 힘들어한다고 한다. 하정우 얼굴 면적의 반조차 될까 말까 한 내 손아귀에 스물몇 송이의 꽃대를 책임져야 한다. 동시에 하나씩 모양을 잡으며 나아가고, 마지막까지 제대로 붙잡고 있어야 흐트러지지 않는다. 꽃이  정신줄이라고 생각하고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혈관만 한 굵기의 꽃들에게 지고 만다. 멋대로 풀어지고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버린다.


사실은 잘 못하는 것

나 스스로 봐도 난 꽃꽂이에 그다지 재능이 없다. 남들이 보기에 내가 손재주가 좋은 편이라고들 하지만 난 안다. 난 손으로 섬세하게 하는 것을 잘 못한다. 자수나 바느질 같은 수예 활동이나 음식 깔끔하게 썰기 같은 것은 젬병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마 다른 문제인가 보다. 세밀하게 그리는 것은 좋아하는데 도무지 자수 같은 것은 못 견디겠다. 뜨개질은 한 줄을 채 못 떠서 하다가 풀어버린다. 실로 뭘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실을 공으로 만드는 것에 더 관심이 있는 편이다. 여자 대장부가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이 없다지만 아마 마음을 강하게 먹어도 디올 하우스 같은 곳에 들어가는 건 무리일지도... (차라리 경영자가 되는 게 빠를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정말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기 때문이다. 함께 동호회를 하는 대리님 한 분은 정말 꽃꽂이를 잘하신다. 언젠가는 진짜로 꽃집 사장님이 되는 게 꿈이시란다. 내 생각엔 꽃집 사장 정도가 아니라 전문 플로리스트로 뭔가 디자인을 팔기라도 하셔야 하는 것 아닐까 싶다..

그에 비하면 난 정신력으로 꽃을 꽂고 있다. 이것은 육체 활동이며 정신력으로 이겨내야 한다. 자연과 나의 기싸움이라는 뜻이다.


사내 동아리지만 아무래도 꽃에 대한 활동이다 보니 동아리의 모든 회원이 여자다. 남성 회원을 막은 적은 없는데 이상하리만치 없다. 회사에 다니면서 회사 안의 여자 직원들을 많이 만나고 싶어서 (그리고 남자가 없어서) 이 동아리에 들어온 속셈도 있다. 아저씨들이 축구니 등산이니 자기들끼리만 노는 자리를 만드니 나도 질 수 없지. 아무리 발악을 해도 사회는 여전히 남성들이 만든 문화에 부식되어있고, 그래서 여성의 커뮤니티는 중요하다. 그렇기에 회사 안에서 여자들과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화장실 말고 또 있다는 것은 매력적이다. 심지어 좋은 것을 보고 느끼며 오롯이 자신 앞의 과제에 집중할 수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다면.


일 하면서 꽃까지 잡는 거 더럽게 힘들다. 그래도 꽃은, 보는 것만으로도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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