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가 눈물로 쓴 일기
- 2019년 10월의 일기입니다.
팀 선배가 퇴사했다. 따지고 보면 회사에 나보다 먼저 입사한 모든 사람이 선배라고는 하는데...내가 팀에서 선배라고 부르는 사람이 딱 두명이었다. 일반적으로 회사에서 직책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직책(대리, 과장 등..)으로 불러드리지만, 그렇지 않은, 나보다 먼저 입사한 같은 팀 사원은 통상적으로 선배라고 부른다. 내겐 그런 의미의 선배가 둘 있었다. 그리고 올해 두 사람 모두 퇴사했다.
나의 회사 생활은 언제나 홀로서기의 연속이었다.
첫 회사에서 입사하자마자 팀 선배가 3개월도 되지 않아 이직했다. 덕분에 나는 입사 3개월차부터 인턴 신분으로 정직원 수준의 실무를 했다. 그렇게 탈출 계획을 세우지도 못할 정도로 바삐 한 반기를 일했다. 탈출은 입사 후 10개월만에 극적으로 이루어졌다. 대기업 공채 신입사원으로 합격. 회사를 다니면서 재취업에 성공하다니 내가 보기에도 남들이 보기에도 독한 시도였다.
그래서 이젠 정말 사회 초년생으로서 회사에서 어느정도 관리도 받고 주니어 수준의 커리어패스를 만들어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내가 세상을 너무 믿은건가? 가고 싶던 팀에 배치 되었지만 입사하자마자 사수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난 대체인력이나 다름없었다. 입사 6년차 대리의 업무를 신입사원에게 그대로 넘기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딱히 거절할 수 있을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사수가 휴직에 들어가기 전까지 하드 트레이닝을 받았고, 지금은 이상하게도 어느정도 해내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좀 억울한걸.
그렇게 입사 후 6개월만에 사수가 휴직을 하게 되었다. 충분히 대비하고 예상한 상황이었기에 괜찮았다. 이미 난 사수가 하던 업무의 70%정도는 해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진다. '선배' 두 명 중 한 명이 암 진단을 받았다. 급작스럽게 선배는 휴직했고, 같은 시기에 두 명 분의 업무 공백이 생겨버렸다. 곧 새로운 팀원을 충원했지만 일은 계속, 계속, 계속, 늘어났다.
휴직한 선배는 돌아오지 못했다. 선배가 돌아올 날만 기다리며 선배가 쓸 다이어리와 탁상달력도 준비해두고 있었다. 항암치료를 받던 선배는 부쩍 마른 모습으로 나타나 사직서를 쓰러 왔다. 치료 경과를 보고 재입사를 하는 조건이라고 해서 그 말만 믿고 지냈다. 선배와는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고기라는 전골도 먹고 기력이 난다는 장어도 먹었다. 그나마 암 환자가먹어도 되는 음식이란다. 장어 먹었으니 선배도 힘이 나겠지?
순진한 생각이었다. 몇 달 후 나는 다리가 저리도록 선배의 빈소를 지키는 신세가 된다.
그리고 두 번째 선배도 떠났다. 지난 주 금요일 자로 이직했다. 첫 번째 선배가 떠날 때에는 장례식에서조차 울지 않았던 내가 두 번째 선배가 떠난다는 소식에는 회사 앞 8차선 대로에서부터 오열했다. 길 잃어버린 아기처럼 사막에서 하이에나에게 목덜미를 물린 아기 치타처럼 엉엉 울었다. 집에 와서도 쓰러져서 주말 내내 울었다. 무너지고 싶지 않아서 몇 달간 참았던 슬픈 마음들이 결국은 터졌나보다. 저는 이제 어떡하나요? 하지만 떠나는 사람을 붙잡을 수는 없는 법이다.
이직한 선배가 마지막으로 출근하는 날이 끝나고, 선배가 없는 첫 월요일에는 내가 가져다두지 않은 레모나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분명히 먹을 것이 생기면 항상 자잘하게 나누어먹던 선배가 두고간 것이다. 마그넷도 선배가 쓰던 것이니 확실하다. 며칠 놔두다가 수요일쯤 한 입에 털어넣고 껍질을 버렸다.
병으로 퇴사한 선배의 책상도 장례식 이후 몇 달을 못 치우고 피하다가 지난 금요일에 책상을 벅벅 닦고 선배 자리의 서류 뭉치도 전부 파쇄해서 버렸다. 그리고 선배가 쓰던 책상은 내가 쓰고 있다. 아, 이럴거면 두 번째 선배 퇴사하기 전에 같이 하자고 할걸. 바보같이 괜히 놔두다가 혼자 다 치운다. 이 책상도 선배가 나 입사한다고 열심히 만들어줬던 자리인데. 선배들 없는 덕에 제가 참 넓게도 쓰겠네요. 다들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시구요. 잘 지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