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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 Sep 24. 2021

3년간의 인사팀 생활을 청산하며

이제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거라니깐!

인사탈출.


지난 3년간 내가 끝없이 되뇌인 단어. 또는 같은 인사 업무를 하는 동기들과 근황을 주고받을 때마다 사자성어처럼 주고받았던 표현. (마치 근하신년 입춘대길처럼)


인사팀에서 보낸 3년은 구질구질했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회사에 다닌다면 가장 잘 맞을 부서라고 생각했고, 또 경영 관리 업무에서 굳이 꼽자면 인사직무는 잘 맞고 또 내가 잘할 수 있을만한 일이었다. 대기업 계열사니까 시스템도 어느 정도 있고 그룹에서 하는 것들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도 많겠지? 


그러나 세상만사는 회사 바이 회사, 사람 바이 사람. 매일같이 야근하고 (야근 없다면서요) 맨날 화내고 맨날 뭔가와 싸우고 맨날 무슨 일이 닥치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무슨 신입사원 생활이 이래? 하다 보니 대리까지 되어버렸다. 그리고 난 대리 승진과 함께 팀을 떠났다. 


다른 계열사 친구의 탈출 축하 메시지



팀을 떠난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인사업무 자체에 대한 회의였다. 


인사팀에서는 무슨 일을 하는가?

이미지 출처 : HR Insight '빨라진 HR 시계, 2020 HR 트렌드 정리'

크게 묶어보면 채용 - 급여 + 교육 + 평가 + 보상 - 이동/퇴사의 흐름으로 진행된다. 나의 경우 대기업 계열사기 때문에 명목상 한 명씩 담당자가 있기는 했다. 이마저도 선배들의 휴직과 퇴사로 분장이 망가져서 결국은 닥터 옥토퍼스처럼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다 했지만.

그래서 불행했다고

노무사를 따서 역량과 몸값을 높이는 전략도 있을 것이고, 커리어를 계속 인사 직군으로 쌓아가면서 다른 회사의 총괄 담당으로 진화하는 전략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결국 인사다. 평생 이런 포지션으로 이렇게 산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바라는 미래는 아니었다. 


인정 욕구의 문제

내가 다니는 회사는 광고회사다. 업무 강도가 높기는 하지만 경쟁 PT에 따른 성패, 그리고 실적이 존재한다. 지원부서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부서가 실적에 시달린다. 그런데 답 없는 일을 3년 내내 하다 보니 차라리 실적이라도... 차라리 야근을 해도 팀원들과 다 같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경쟁 PT라는 것이 100% 직원의 역량으로 결과가 나오는 일은 아니지만 좋은 결과가 나오면 공개적으로 축하도 받고, 포상도 받는 모습들이 솔직히 부러웠다.


반면 인사직무는 현상유지가 최선인 일이다. 내가 잘못했든 잘못하지 않았든 뭔가 문제가 생기면 그것이 만천하에 드러나 블라인드에 익명으로 효수되고 만다. (익명 맞냐고) 나처럼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에게는 다소 불행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직원들에게 맞게 제도를 더 좋게 바꾸면서 거기서 보람을 느낄 수는 없냐고? 그래서 저에게 보람이 생겼으면 제가 이 짓을 그만뒀을까요 이런 XX


어쩌면 회사 문제일지도요

다만... 업무 분장도 합리적이고 직원들과의 관계도 좋고 시스템도 잘 갖춰진 회사였다면 어땠을까? 아니 그런 인사팀이 존재는 하는 걸까? 그런 걸 겪어봤어도 내가 이렇게 회의를 느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그간 어떻게 살았느냐

3년간 주로 담당한 업무는 HRD였지만 인력관리, 급여지급, 채용 백업 등의 업무도 경험했다. 대기업 계열사이다 보니 그룹에 제출하는 페이퍼 워크도 많고, 동시에 직원도 많아서 전화받다 보면 하루가 다 가고 자료 만들기는 저녁 6시부터 시작한다. 큰 회사라 감사도 종종 받아야 되고 드려야 하는 자료도 많고 공단 직원한테는 맨날 혼나고 오늘은 집에 좀 가볼까~ 하면 노동청/고용센터에서 전화가 온다. 네네 자료 다시 드릴게요. 외부에 제출하는 것들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매년 새로운 게 생긴다. 양식은 엑셀에 수식 걸어서 배포해주시면 안 될까요...? 제발


내부 시스템은 또 어찌나 젊은지 곧 있으면 10년이 되어가는 시스템을 쓴다. 직원들 사번 처리가 일괄로 안되고 한 명씩 클릭으로 해줘야 함 ㅋㅋ 완전 디지털 노가다죠? 이런 사실을 직원들은 모른다... 400개를 하나씩 하나씩 누르는 줄 상상도 못 한다. 상식적으로 2021년에 그런 상상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매일매일 이 생각만...

법은 또 왜 이렇게 자주 바뀌고 통보도 안 되는지... 공단에서 주기적으로 팩스가 오는데 내용이 항상 똑같다 ㅋㅋ 휴직 관련 업무라도 처리해주려면 찾아보고 업데이트해줘야 하고 법이 예정이었다가 또 바뀌었다가 이랬다 저랬다 하는데 정리된 내용이라곤 공단 사이트 제도 안내밖에 없으니 직원들이랑 똑같이 검색 열심히 돌리고 이해 안 되면 자문 노무법인에 전화해서 물어보고... 노무사 분도 처리해본 적 없는 희한한 일이 생기면 하루 종일 노무사님과 나의 1:1 전화데이트 시간이 되어버리고 말아... 


그러나 이렇게 열심히 정리해서 하는 일은 신고하기 버튼 하나를 누르기 위함이다. 이걸로 무슨 평가를 받고 누구의 인정을 받겠는가. 인정 욕구 강한 사람은 이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사내 / 자문 노무사마저 없다면 모든 것은 오롯이 당신의 일)



제법 잘 지냈는지도

다른 팀원들은 어땠을지 몰라도 나는 직원들과의 관계가 좋은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같이 입사한 동기들이 각 팀에 흩어져 있다 보니 도움도 많이 받았다. 인사팀의 최대 단점이 직원들로 오는 스트레스일 수 있지만 또 최대 장점은 누구와도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직원과 연락을 주고받으니 업무를 넘어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이 생기기도 하고, 또 인사팀에서 근무하지 않았다면 평생 대화도 해볼 일 없는 사람들과도 인사를 주고받게 되기도 한다. 거기에 계열사의 다른 담당자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근황 공유하는 것도 대기업 생활의 재밌는 부분 중 하나기도 할 거다. 나 정도면 정말 잘 지낸 것 같은데...? 아니라면 죄송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퇴사를 결정하는 이유가 단순히 돈 때문은 아니듯이 나 또한 인정 욕구를 포함한 여러 가지 고민을 바탕으로 팀을 옮기게 되었다. 전술한 상황들은 사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또 실적 압박이 과한 누군가에게는 지리멸렬한 페이퍼 워크라도 좋으니 도달하고 싶은 위치일 수도 있다. 다만 나는 이 일을 지속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미래의 내 모습과 괴리가 생긴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나루토! 현업을 마스터하면 다시 인사팀으로 돌아올 거지? / 아니 전혀 돌아가지 않을 거라니깐!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의 메인 업무는 HRD였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아예 지인분과의 질의응답으로 진행한 내용이 있어 그것을 재구성하여 다음 편에 포스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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