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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 Feb 23. 2020

사물 쓰기, 9. 달력

또 한해 더 살아버렸다.

비로소 새 달력을 꺼냈다. 올해 회사에서 받은 달력의 디자인은 가로형과 세로형의 두 가지인데, 서로의 것이 니즈에 맞아 동기와 달력을 교환했다. 동기는 프로젝트별로 표기할 내용이 많아 가로형이 꼭 필요하단다. 하지만 가로형 달력은 한 달에 5주차일경우 30일~31일이 4주차와 한 칸에 구분되어 정확한 날짜 구분이 불편하다. 업무상 월말 일정 구분이 이루어져야 하는 나에게는 모든 날짜가 제각각의 구분선이 있는 세로형이 필요하다. 직무의 다양성이 이렇게 실생활에서 드러나는 순간이다.


조건, 메모가 가능할 것
언제부터였을까. 다이어리나 스케쥴러에 적어오던 일정들을 달력에 적기 시작했다. 스케쥴러를 끼고 살던 고등학교 시절이 지날 무렵부터였을 테니 아마도 대학에 입학하면서 달력을 스케쥴러처럼 쓰게 된 것 같다. 그렇기에 내가 쓰는 달력에는 중요한 기준이 있다. 칸 사이즈가 어느 정도 메모하기 좋을 것. 마음 같아서는 나도 귀여운 일력이나, 조그마한 일러스트 달력을 사버리고 싶다. 하지만 날짜 확인이 아니라 메모를 위해 달력을 쓰기 때문에 아쉽게도 나의 선택지는 좁고 확고한 편이다. 단순히 귀엽다고 달력을 여러 개 살 수는 없으니까.


회사를 다니게 되면서부터는 회사 달력을 절찬리 이용하게 되었다. 절찬리라고 하기에는 이 회사에 다니고 받는 두 번째 달력이지만. 곧 3년차가 된다는 뜻이다. 이젠 점점 맘 놓고 실수할 수 없는 연차가 되어간다. 다만 나는 사바나의 아기 치타만도 못한 주니어 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만 같아 억울하기만 하다. 주말에 본 치타 다큐멘터리의 아기 치타 라라는 혼자 절뚝거리며 가족을 쫓아간다. 천적이 득실득실한 야생에서도 가족들이 기다려는 주더라. 그러나 이 미친 개회사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2018년에 쓰던 달력


나이 먹는 것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벌써 2020년이라니. 왠지 라임이 맞아 마음에 드는 숫자다. 여기저기 타이포 장난이나 카피 장난을 치기 좋을 것만도 같다. 마침 20주년이 되는 회사는 얼마나 좋을까. 아주 그냥 이벤트 명분 붙이기도 좋고 부족함이 없는 숫자다. 2000년이 되면 세상이 사라진다더니 19년이나 꽉 채워서 더 살아버렸다. 2000년 3월에 눈 내린 운동장에서 곰곰이 생각했었다. 2001년에 초등학교를 입학한다면 내가 몇 학년인지 외우지 않아도 될 텐데. 2001년엔 1학년, 2002년엔 2학년.. 2006년엔 6학년. 얼마나 편할까? 마치 세상이 그들을 위해 맞추어진 듯한, 그리고 나는 조금 비껴 나간 듯한 그 기분. 그렇게 생각하니 2000년에 태어난 친구들은 평생 나이 헷갈릴 일은 없겠구나 싶었다.

내 나이, 라는 것에 대해서 20살이 넘은 후로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대학교 2학년이 되면 헌내기다, 우리는 늙었다 라고 자조하는 부류의 사람들과는 다행히 내가 성격조차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들은 내 인생에 잠깐 스쳐 지나갔고 나는 벌써부터 내 나이가 몇 살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기억이 나는 사람이 됐다. 회사를 다니다 보니 임금피크제 이슈가 나오지 않는 이상 나이에 대해서 깊게 생각할 일이 잘 없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또래 여성들에게 나이가 가져오는 불안은 너무나 크다. 그리고 여전히 그 굴레를 씌우는 윗사람들도 존재한다. 난 그들이 봐도 확실히, 어리기 때문에 요리조리 피해 갈 뿐.

너는 자라 틀딱이 되겠지
언젠간 나도 더 이상은 '어린 사람'이 될 수 없는 위치가 될 거다. 아직까지는 운이 좋아 어디서나 가장 어리고 막내 포지션을 고수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렇지 않다. 나의 30대를 기대하고는 있으나 때로 내가 불편해하고 싫어하는 이들의 모습이, 누군가 나를 볼 때도 겹쳐지게 될까 봐 걱정하며 걱정하고 있다.

사실 다들 고만고만한 나이인데 이 세상이 너무 과하게 나이에 집착한다. 나마저도 한 살 차이에게 선배님이니 후배님이니 하며 중고등학교를 다녔으니. 그런 위계질서를 끊어내고 싶어 '하지 말라' 해도 준비해오는 후배님들을 마주했을 때에는 정말이지 착잡했다. '다음 세대'의 사람은 보다 대범하고 불합리한 것을 빠르게 버릴 줄 알아야 한다. 나부터도 그래야 하는데 (연장자 공경) 하지 말래서 안 하면 미묘하게 불쾌해하는 그 꼴이 보기 싫어 그냥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해줬을 때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답습해버리고 만다.

그들이 내게 하는 짓거리들이, 되돌아보았을 때 정말로 상식적이고 옳은 행위였을까. 나이는 무엇이고 질서란 무엇이냐. 나이로 나를 눌러 치고 찢고 때리시던​ 분들은 가지고 있던 젊음을 모두 잃고 완연한 노화가 왔을 때에, 과연 후회하지 않을 것인가.


후회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그들을 틀딱이라 비웃으며 젊음의 탭댄스를 추고 있지만 여전히 두렵다.

어떻게 해야 잘 나이들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해야, 좋은 어른으로 남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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