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물 쓰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나 Mar 06. 2020

사물 쓰기, 10. 칫솔

필요하잖아요, 이런 행복이라 할지라도.

얼마 전 친구 h에게 칫솔을 선물 받았다.

데일리라이크의 귀여운 칫솔들


회사에서의 내 생활과 관련된 대부분의 물건이 삭막하지만, h의 선물 덕분에 조금은 생기를 얻었다. 칫솔을 두 개나 받았지만, 회사에서 이번에 받은 칫솔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h는 내가 지금 회사에 입사할 때에, 입사 선물로 붉은여우가 그려진 칫솔을 선물해 주었다. 아주아주 귀엽다. 너무 마음에 든 나머지 입사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이 칫솔을 챙겨 오게 되었다. 비록 치약은 멋없이 페리오를 쓰고 있다 하더라도, 점심시간의 끝을 붙잡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나의 손에는 이 귀여운 칫솔이 함께하지. 그러니 오후가 조금은, 아주 조금은 더 참을만해진다.

h가 선물해준 칫솔은 그래서 괜히 고맙다. 매일매일 양치를 하며 항상 떠오르기 때문에. (이걸 의도한 거지!) 이 삶에 나 혼자 태어나 혼자 가더라도 나의 치아는 네가 선물해준 어떤 플라스틱 고체를 통해 건강을 유지하리라. 나와 h는 오랫동안 알아온 사이이며, 서로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함께 성장해왔다. 그렇기에 우리 사이에서 일상적인 선물은 더 소중한 의미로 다가온다. 어떤 생각으로 주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소소하지만 기분 좋게
그래, 우리네 삶은 더 이상 큰 것을 꿈꾸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일상의 작은 것들이나마 빛나게 하고자 다들 무던히 노력을 하고 있다. 이미 태어나버렸으니 이렇게라도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도무지 살아지지가 않거든. 이미 '밀레니얼 세대'를 향해 이루어진 상투적인 분석에 상투적인 표현을 따라 쓰고 싶지는 않다만, 인정해야겠다.


나를 포함한 나의 세대는 소소하지만 확실히 기분 좋은 무언가를 원한다. 이렇게 모아서 내 돈으로 뭘 산다니요. 꿈꿀 만큼 큰 것은 빚 없이 얻을 수 없다. 나는 빚 안 지고 살 테야 라고 막연히 생각하던 초등학생~중학생 시절의 나에겐 미안하지만, 세상은 살아있기엔 너무나 비싸고 나에겐 한점 아이폰과 아이패드뿐이 없습니다.



우리가 예상하는 우리의 끝이 더욱 선명해질수록 지금이 소중해진다. 내 손으로 바꿀 수 없는 흐름인 것도 잘 안다. 나의 세계는 천천히 멸망할 것이고 그래서 미래에 모든 것을 걸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젊은이여 꿈을 가져라 라고 말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꿈과 내가 바라는 꿈은 어쩌면 다를지도. 여전히 내게는 야망이 있고 더 큰 부와 명예를 갖고 싶다. 더 잘 먹고 잘 살고 싶고 어른들처럼 오래오래 해 먹고 싶다. 하지만 그걸 위해 내 현재를 소모해버리고 싶지는 않다는 거, 우리 친구들 모두 RGRG?

매거진의 이전글 사물 쓰기, 9. 달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