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소동

Ep33 아쉬움은 인정의 일종이라는 사실에 서러워진다.

by 요거슨 댈리

하지만 가끔은 창문 밖으로 반짝이는 강이 보이기도 했고 검은 도로를 밝히는 불빛들이 아름답기도 했다.

누군가는 어두운 거리 속에서 비틀 거렸고 또 누군가들은 활발한 손동작을 하며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마침내 끝이 난 계단, 열린 옥상문을 통과했을 때 코끝이 찡할 정도로 상쾌한 바람이 공기 속에 녹아 있었고

하늘은 칼바람이 찢어낸 먹구름 사이로 유난히

맑은 달과 밝은 별빛으로 고요했다.


그때 나의 기분은 괜찮아질 거란 믿음으로 희망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찌라시를 돌리며 계속해서 그 날의 풍경들이 떠올랐다.

더 멀리 본 것 같았고 더 가까이 간 것만 같았다.

찌라시가 한 장 남았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저 학생. 있잖아. 생각을 좀 해봤는데. 그게."

"네?"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니었고....... 아니다. 무슨 말을 더 하겠어. 부조금, 사실 얼마 안 되는 거지만

시간 날 때 받아가. 근데 그 여자, 학생이랑 같이 왔던.

그 여자한테는 안 줬으면 해. 뭐, 학생 마음이지만.

아참! 이름이 상연이었지?"

"네."

"그래. 미안했다."


사무실로 향하던 오토바이를 돌려 가게로 향했다. 돈봉투를 쥐어주는 내내 아주머니는 할 말을 참느라

애가 타는 모양새였다.

덤덤하게 인사를 하며 잠시나마 손에 들린 돈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고민들의 앞과 뒤는 늘 그럴 수 없는 고민이 놓여 마음이 가볍기는커녕

더 큰 압박으로 숨통을 조여 온다.


'하연이'


형의 그림자는 시계의 분침처럼 기울어져 오후를 가리키고 있었다.


"형! 별일 없었어?"

"응. 아- 피곤하다. 내일 이야기 하자."

"어?"


돈뭉치를 내밀어 보여도 형은 가만히 웃을 뿐 대꾸가 없다.

재미있는 장난이라는 치는 듯 가끔씩 키득거리는 형을 보자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다.

아파트 앞에 도착해 형에게 같이 저녁을 먹자고 권해봤지만

'내일 이야기 하자'는 대답 같지 않은 답을 하고 집으로 달려 들어갈 뿐이었다.

모든 게 다르지 않았다.

현관문 앞으로 달려 나와 내 손 끝만 바라보는 하연이의 배고픈 표정과 이내 실망감으로

또 그 실망감이 주는 좌절감으로 나를 원망하는 녀석이다.


"떡볶이 먹을래?"


순식간에 표정이 바뀐 녀석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어둠의 끝이 밝음이라고 상상했었다. 어떤 순간의 끝은 그대로 절벽 같을 수 있고

아님 상상조차 못 할 다른 장면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떡볶이를 먹고 반찬 가게에 들러 진미 오징어, 콩자반, 어묵 따위의 오래 두고 먹을 만한

반찬들을 한가득 담은 봉지를 들고 돌아간다.


'몇 개월 후면 내가 하연이를 키울 수 있는데'

라는 아쉬움이 들 때쯤 현관 앞에 도착했고 반찬들을 정리하고 냉장고 문을 닫자

아쉬움은 인정의 일종이라는 사실에 서러워진다.

잠든 하연이를 바라본다.

금방이라도 달려갈 듯 사지를 뻗은 녀석

같은 오늘이란 낱말에도 나라는 자신으로 뚜렷하게 존재하는 아이.


그런 녀석을 들어 이불 위에 눕혀 바라보며 내게 '몇 개월이면 된다'는 희망만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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