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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거슨 댈리 Sep 11. 2016

'나중'이란 기회

거짓말쟁이
친구의 위안

중학교 때부터 친구인 그녀와 오늘 통화를 하기로 약속했어요.

안타깝게도 파마를 하느라 시간이 밀리고 있어요.


추석이라 손님이 꽤 많아서 오래 걸린다네요- 공손한 녀석, 미안할 일도 많다.


늘 널 기다리는데 요렇게!


이 친구 자랑을 좀 하자면,

- 고등학교 시절엔 반항아인 저 대신 선생님의 핀잔을 들어줬고,

- 저녁 도시락 값을 아껴서 교재를 사는데 도움을 주고자 1개의 도시락만 주문해서 나눠 먹어줬어요.

- 자우림의 노래를 소개해 줬고

- 중립에 서서 생각하는 자세를 알려줬죠.

- 의심받을 땐 절 믿어줬습니다.


열거하자면 끝이 없어요.

저희 어머님께서 기억하시는 몇 안 되는 제 친구 중 하나죠^^.

팔불출이죠, 사실 쓰고 보여주려고요.(꿍꿍이)


그녀의 전화를 기다리며-


어젠 눈썹 연장을 했습니다.

이 곳에서도 저를 놓지 않으려 하는 한 가지죠.

사실 이런 사치는

대화가 필요해서 이기도 해요.

저와 비슷한 시기에 이곳으로 이민을 오신 분이죠. 그리고 제가 첫 고객이 되었었죠.

여자들이 미용실에 가는 건,

다만 머리를 하러 가는 게 아닙니다.


수다-


예뻐지는 건 부차적인 것이기도 하죠.

워낙 꾸미지 않는 성격이라 한국에 있을 때도 같이 일하던 분이 '정말 속눈썹 연장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란 부탁을 받아 치장이 시작되었어요. 역시 타인의 충고는 소중합니다.


덕분에 'garden city'에 가보게 됐어요. 비록 길은 잃었었지만;


지금 제겐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어요.

새들에게 공격받는 공포보다 한 사람이 주는 두려움은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네요.


마침내 전 일을 그만 두기로 했어요.


많은 것이 완벽하죠. 좋은 사장님, 괜찮은 메이트들.

하지만

그녀는 이해하기 힘드네요.

시간이 지나면 밝혀질 쓸데없는 거짓말과 이간질.

도대체 전 그녀에게 어떤 잘못을 한 걸까요?


시작은 알 것 같아요.

'제가 잘 못하는 게 있음 저에게 직접 이야기해주세요.'

순진한 전 그 말을 믿었고, 이후 그녀는 사람들이 없을  

'저에게 불만이 많으신가 봐요?'라며 뜬금없는 소리를 해댔죠.

 

깨진 유리 같아요.

실제로 잔디를 정리하다 돌멩이가 튕겨서 거실 유리가 깨지긴 했습니다만-


고등학교 때였어요.

전학생 친구는 어릴 때 발레를 했고,

집도 잘 살고,

공부도 잘 했죠.

물론 잘 생긴 남자 친구도 있댔고........


제 짝꿍은 부반장이었고, 그녀는 그런 전학생을 각별히 챙겼어요.


당시 반항아였던 전,

비가 오면 학교를 안 갔죠.

(다행히 대구는 메마른 곳이라- 학업 일수를 다 채우긴 했습니다.)


비가 온 날 = 학교를 가지 않은 날

= 짝꿍의 돈 5만 원이 사라진 다음날


짝이었던 부반장은 절 의심하며 추궁했어요.

영문을 모르는 전 묻는 말에 잘 대답했죠. 스스로도 의심할 수 있다고 믿으며.

그리고 두 번을 더 의심했죠.


- 책이 없어졌는데 네 책상 서랍 좀 봐도 되겠니?

- 문제집이 없어졌는데 혹시 네가 가져갔니?


'그럴 수 있지.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야.'


그렇게 세 번을 군소리 없이 취조에 응해줬어요.


시간 앞에서 사람은 결국 투명해져요.


2학기가 되었을 때,

이미 전학생이 거짓말쟁이였고,

그 아이의 입김으로 제가 의심을 받았던 사실이 밝혀졌죠.


부반장의 죄책감은 저의 침묵에 비해 상대적으로 컸을 거예요.

나름 지위가 있었고, 배운 친구라 더더욱.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반응하지 않고, 묵묵히 있던 제가 오히려

그 친구에겐 죄책감이라.


무결점의 학교 생활에서 유일한 오명 이리라.


이후 그녀는,

전학생을 왕따 시키는 주역이 되어 활동하고 있었죠.


우리의 죄책감을 알아차리는 건 간단해요.

누군가가 알아주길 바라는

과도하게 큰 추임새.


죄책감의 리액션은
거짓말의 그것과 같아요.


어쨌거나, 지금 제 상황은 완벽함 속의

유일한 오점이라기 보단 .,

작은 블랙홀 같아요.


일각에선 왜 네가 그만두냐는 말도 있지만,

시간 앞에 모든 게 투명해질 때까지 이를 갈며 견디는 삶은 지옥이에요.


저 나름의 후회와 그들의 후회,

이 문제의 후회는 조금이나마 절 의심했던 이들의 몫이니까요.


제가 버틴다면 그녀는 점점 더 큰 거짓말과 과장을 하게 되겠죠.


삶엔 '나중'이란 기회는 드물어요,
지금이 삶이 대가 없이 주는 기회죠.

'나중'을 살고 있어요.

'지금' 전 제가 언젠가 '나중'으로 미뤄뒀던 날들을 지내고 있어요.

운이 좋게도 나중을 말했던 과거를 기억해요.


통화를 하기로 한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하다

12월에 독일 여행을 할까 생각 중이란 말이 나왔어요.

그녀도 12월에 독일에 갈 생각이네요!


하나를 가져간 삶은

우연이란 인연을 선사하기도 하네요.


그간 잠 못 이루며 받았던 스트레스를 잊게 해 준 그녀에게 다시 감사함을 전합니다.


감정은 참 얄팍하네요.

다시 행복해졌어요.


이 상황을 포기하고 나니. 어쩌면 나쁜 직장을 구하게 될지도 몰라요.

여하튼, 전

'나중'이란 기회를 '지금' 써버릴 생각입니다.


공모전이 코앞이네요.

겸사겸사 2주 노티스를 하고

일을 그만두면

바로 원고를 수정하고

제출!!


다시 숨을 들이쉬려

한숨을 내쉽니다.

그리고 다시 제게 속삭입니다.

지금이 기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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