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소동 13

각오와 온갖 명언들을 뜯어 내니 빛이 든다

by 요거슨 댈리
창문에 덕지덕지 발랐던

나의 각오와 온갖 명언들을

뜯어 내니 빛이 든다.

"탁탁탁"


철문에 귀를 대자 낡은 심장이 힘겹게 뛰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승범이 형 나 왔어요."


형은 예상보다 밝은 표정으로 문을 연다.

들여다본 방안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먼지들로 가득하다.


"방 정리 도와주러 오라더니, 벌써 끝나가네."


"야- 누가 청소시키려고 불렀겠냐?

네가 기운 없어 보이니까 탕수육이나 사 먹이려고 불렀지.

하연이는?"


"사장님 댁에 맡기고 왔어요. 일자리도 구해야 하니까."


자꾸만 가라앉는 말꼬리를 당기듯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배달이요-"


형이 웃으며 쿠폰 15장과 만원을 쥐어준다.

"모자란 건 네가 처리해."


문을 열자 마치 거울 앞에 서 있듯 묻지 않아도

나와 같은 처지일 녀석이 있다.

녀석은 퉁명스럽게 쿠폰과 잔돈을 쥐어주고 동갑내기에 대한 비굴함을 감추려는 듯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걸어간다.



형은 굵직한 글씨가 도드라지는 종이들을 바닥에 대충 던져 식사터를 만들었다.

자장면 접시에 붙어 올라온 종이에는 온갖 명언과 각오가

짧고 굵게 적혀 다.


그리고 두꺼운 판례들 위로 탕수육을 올려 앉힌 형이 입을 열었다.


"보성아, 난 이제껏 몰랐어.

내 방이 이렇게 밝은 지.


창문에 덕지덕지 발랐던 나의 각오와 온갖 명언들을

뜯어 내니 빛이 든다."


형이 탕수육을 집어 들며 말을 잇는다.


"보성아,

판례들을 보며 느낀 건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비극적인 상황도


한 페이지만 넘기면 빠져나올 구멍이 있더란 거야.

우습게도 고작 바로 뒷면에 그따위 희망이 붙어있더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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