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소동 14

발 밑은 벽이기도 했다가 땅이기도 했다가 그저 그런 바닥이 되기도 했다.

by 요거슨 댈리
비록 달리기엔 무리가 있는 운동화지만
젊음이란 푸르름이 발바닥에라도 붙어있는 게

특별하단 긍정을 부려본다.



"드르륵드르륵"


씹고 있던 고기를 양볼로 밀어 넣으며

당황과 기대의 기색으로 전화를 받는다.


"네, 여보세요?"

"승범씨 맞아요?"

"네, 네, 네."


형이 과도할 정도로 공손히 움츠려 통화를 하는 덕에

자꾸만 목소리가 몸통을 울린다.


목이 막혀 저러나 싶어 콜라 잔을 내밀어 보지만 급하게 손사래 친다.


"아, 네. 가능합니다. 네. 감사..."


말을 잇는 틈에 통화가 끝난 모양이다. 몰아넣은 고기를 다시 씹는 형의 얼굴이 들떠있다.


"좋은 일이야? 뭐야, 형아?'


"어. 나 취직했어. 맛있게 먹어. 빨리 먹어. 너도 곧 취직될 거니까 걱정 말고!"


어느새 자장면을 말끔히 비운 형은 탕수육 몇 개를 양념 속에서 건져내 나의 그릇에 올려준다.

다정한 얼굴이 반갑자마자 벌떡 일어나 주머니에서 구겨진 명함을 꺼내 내민다.


"바빌론?"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오토바이도 탈 줄 알고 배달일도 하니까 투잡이 어떨까 해서.

배달하면서 찌라시만 돌리면 돼."


고시에 대한 배신감인지 양심에 반하는 형의 행동을 받아들이기 힘듦에도

마음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탕수육 그릇마저 비워내자 형이 바닥을 딛고 일어난다. 잠깐 빈손을 바라보다

책이 가득한 박스를 들어 올린다.


"돈 벌로 가자."

공부를 하던 몇 년,

처진 어깨로 사계절을 슬리퍼만 신고 다니던 형이 운동화를 신은게 생소하다.


"책 팔아서 하연랑 저녁 먹자."


"어."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움직이자 허리를 부여잡는 형의 손에서 어딘지 모르게 애절함이 느껴진다.


"보성아, 신발도 사줄게."

"형이나 사. 난 아직 걸을 만 해"


어젯밤 급하게 신발을 수습했다. 다시 초록색 테이프를 붙이며 '다음엔 본드를 써야지'라고

이후를 기약했다.


비록 달리기엔 무리가 있는 운동화지만 젊음이란 푸르름이 발바닥에라도 붙어있는 게

특별하단 긍정을 부려본다.


10분 남짓한 거리를 달려 헌책방 앞에 선다.

이 순간 전까진 가끔씩 형을 따라 책을 구하러 왔었기에 익은 얼굴의 주인 할아버지의 표정이지만

낯설다.


"로스쿨이다 뭐다 해서 나도 이젠 장사 접을 지경인데 이딴 헌책들을 어디 쓰라고......"


박스를 바라보던 할아버지가 주머니에서 만원을 꺼내 형의 손에 쥐어준다.


"고생했어. 나도 젊은 나이에 책방을 시작했었어.

처음엔 헌책이 될지 몰랐고,

이렇게 무용지물이 될 거란 건 꿈에도 몰랐어."


암담한 표정으로 서있는 청년을 달래듯 할아버지는 책을 꺼내 들며 형의 마음을 보듬는다.


"젊고 똑똑한 사람이니 뭐든 잘 할 거고,.

세상엔 자기 자리 같은 건 없어.

아침마다 딛고 일어나는 땅도

어느 땐 길을 가로막고 선 벽이기도 하니까.

편한대로 바꿔 각하기도 하는 거지."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있는 형의 표정은 큰 변화가 없으면서도 희비가 공존했다. 선채로

무용지물에서 젊고 똑똑한 사람이 되기도 했고,

발 밑은 벽이기도 했다가 땅이기도 했다가 그저 그런 바닥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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