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기다렸어

by 공백감자


높이 솟은 푸른 하늘

선명한 풍경이 눈에 들어오면

가을이다


에어컨을 켜는 대신

창문을 열어젖히면

이제는 가을이다


잎사귀 바스락거리고

입맛이 돌기 시작하면

드디어 가을이다






우리나라의 사계절은 뚜렷하다고 배운 시절에도

가을은 비교적 짧다고 생각했었다.

기후변화로 여름과 겨울이 길어진 지금은

가을은 마치 점처럼 지나간다.


그러니 기나긴 여름을 지나

가을이 오고 있는 지금

서늘한 바람에 설레오는 내 마음은 당연한 것이다.


지하철에서 내려 회사까지 걷는 길에

등을 찌는 이 더위가 믿기지 않았는데

오늘 아침은 웬일인지 바람에 올라탄 듯 발걸음이 가볍다.


은행나무가 물들고 단풍이 들기 전

파아랗게 높아진 하늘과

서늘해진 바람이 가을이 왔다고 먼저 알리니


잡힐 듯 말듯한 가을을 놓칠세라

이번 주말은 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에

출근길에 설레어 버린다.


차 한 잔의 여유에 내다보는 사무실 밖으로

드디어 가을, 내가 왔으니 나를 누리라며 손짓하는 바람에 살며시 웃어 보인다.


어깨가 짓눌리는 출근길 마저 나를 붕 뜨게 하고

답답한 사무실 안에서도 나를 미소 짓게 하는

가을을 내내 기다렸다.


앞으로 몇 개월 남지 않은

아예 사라져 버릴지도 모를 가을이랑

내내 놀아야지라고 다짐한다.


드디어 가을이 왔다.

답답한 현실에 숨도 한번 내쉬라고 드디어 가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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