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춘

by 공백감자


육체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러니 마음을 젊게 가져라

회춘은 다른데 있는 게 아니라

생각에 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주인공 소피가 마녀의 저주로 인해 할머니 모습으로 변하여 집을 떠나게 되는데, 그러다 하울의 성에서 지내면서 겪는 여정을 그린 영화이다.


어릴 때는 이 영화를 보면서 걸음걸이가 느려지고, 허리에서 우두둑 소리가 나는 등 늙어버린 육체에 힘들어하는 소피를 보면서 '나이가 든다는 건 버거워지는 거구나'라고 일차원적인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영화를 보니 황야의 마녀가 소피에게 건 저주는 단순히 늙은 모습으로 변하게 하는 게 아니라, 소피의 자아와 자신감을 나이로 환산해 외적으로 보이게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이 영화는 할머니 모습이었던 소피가 점점 젊어지면서 소녀의 모습으로 끝이 나는데, 외모만 달라진 것이 아니라 소피의 성격도 180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 소피는 장녀로서 가업을 이으며 자신이 무엇을 하며 살길 원하는지도 모른 채 묵묵히 자신의 일터와 집을 지키는 소녀였다. 더군다나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이 없고, 자신이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소피의 모자가게에서 일하는 또래의 여자아이들과 대조되는 모습을 보인다. 한껏 꾸미고 재미난 일에 까르르 웃으며 생기 넘치는 소녀들은 대화에는 관심이 없는 소피와 대조되어 더욱 천진난만하게 어려 보인다.


그러나 소피가 할머니가 되어 여정을 떠난 후, 소피는 이전보다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황야에서 만난 순무에게 하룻밤 묵을 수 있는 거처를 부탁하며 '늙으면 오히려 뻔뻔해진다'라고 말하는 모습과 말하는 불 캐시퍼를 보고도 놀라지 않으며 '나이를 든다는 건 오히려 좋은 것'이라 말하는 모습에서 소피가 점점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원래의 모습에서 자신감이 없었던 태도와 달리 할머니가 되어 외모에 콤플렉스가 사라져 자기주장이 뚜렷해진 모습에서, 그동안의 소피는 스스로 못생겼다고 생각하여 자신을 숨기는 게 몸에 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할머니가 되어 더 이상 자신을 숨길 필요가 없어지자 내면에 숨어있던 자기주장과 자아가 나온 것이다.


아마 소피는 여태껏 여행을 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만나는 사람도 새엄마와 여동생, 모자가게 직원들 정도.

할머니가 된 후 그들과 지낼 수 없게 되자 황야로 떠났는데, 처음으로 바다도 보고, 순무, 마이클, 캐시퍼, 하울, 황야의 마녀, 힌, 설리먼 등을 만나며 가족과 동료 외에 관계를 맺으며 친구, 조력자, 적대자 등을 소피의 세계를 다채롭게 만들어간다. 그렇게 소피는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고, 친구와 연인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는 태도로 변해간다.


저주를 건 황야의 마녀조차도 저주를 푸는 법을 모른다고 했지만 그 방법을 소피가 찾은 것 같다.

모두 눈치챘겠지만, 소피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지낼 때, 집을 떠나기 전보다 훨씬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지고 조금은 젊고 밝은 모습의 할머니가 되었다. 특히, 소피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솔직해지고 적극적으로 표현할수록 소피는 점점 젊은 모습을 보였다.


이 점에서, 소피의 모습이 내면을 반영하여 실제로 젊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소피는 저주받은 모습 그대로이지만 그녀의 숨김없는 태도가 하울과 우리들의 눈에는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으로 비치는 것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영화에서 소피를 아름다워 보이게 하는 건 그녀의 내면이라는 점은 같다.


이는 저주가 걸리지 않은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 무대 위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웃으며 발표하는 사람, 길을 잃은 외국인에게 선뜻 다가가 바디랭귀지로 설명하는 사람, 부당함을 당당하게 외치며 바로잡으려는 사람,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을 숨기지 않고 떳떳하게 내보이며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솔직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멋있어 보이고, 아름답다. 눈, 코, 입이 조화롭고 몸매가 완벽하여 이런 단어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멋짐과 아름다움은 외모에만 쓰이지 않고, 태도에도 쓰이기에 이 단어를 선택한 것이다.


내가 본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회춘하는 법을 알려주는 영화이다.

피부가 주름지고 골골거리는 육체일지라도

세상으로 열린 문을 닫지 않고 자신에게 솔직하고 감정과 주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면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여전히 이팔청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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