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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가장 불편한 축제

일 년에 두 번씩 드러나는 가족의 민낯

by 달보


어릴 땐 명절이면 시골집은 늘 북적였다. 아버지 형제들은 모두 두 명 이상의 자녀를 두었으니, 친척들만 해도 제법 많은 편이었다. 처음엔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이 낯설어 쭈뼛거리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그들 사이에서 소에게 밥을 주며 웃고 떠드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했다. 설날이면 세뱃돈도 두둑이 받았으니, 명절은 그야말로 축제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되고 보니, 명절은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언제부턴가 친척들이 하나둘 빠지기 시작했다. 결혼한 사촌누나들이 시댁으로 가는 건 그렇다 쳐도, 딱히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오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러다 결국엔 우리 집 식구들만이 큰집에 들르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아버지 형제들은 이제 더 이상 볼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생각해봤다.

어쩌다 명절이 이렇게 변해버린 걸까.


지나친 점잖음이 만든 거리감

아버지 쪽 친척들은 대체로 점잖다. 술, 담배를 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처음엔 그게 무조건 좋은 줄로만 알았다. 술에 취해 종종 사고를 치는 외갓집 식구들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잖음도 지나치면 좋을 게 없었다.

아버지네 사람들은 서로 예의를 차리는 건지, 원래부터 안 친한 건지 모를 정도로 대화가 적었다. 기껏 모여 놓고 하는 거라고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제삿밥과 다과를 먹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사소한 불화라도 생기면 쉽게 사이가 멀어지는 걸 자주 목격했다.


너무 많은 식구들

가족이 많으면 좋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흔히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하듯, 사람들이 많으면 유대감을 형성하기가 어려웠다.

특히 아버지 쪽 가족들처럼 각자 '역할놀이'에 빠져 있을수록 더욱 그랬다. 명절이면 큰집에서 시끄러운 사람은 어린아이들과 어머니뿐이었고, 나머지는 텔레비전 소리만이 어색한 공기를 휘저었다. 듣기로는 할아버지가 워낙 엄하셨다고 하던데, 그 영향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형식적인 제사

제사를 지내는 취지는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지도 모르는 조상의 제사를 매년 지내는 것은 쉽지 않다. 어른들은 "이분은 누구의 누구"라며 매년 설명해 주지만, 아무리 들어도 당최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는다.

관계도가 복잡해서 별도로 공부하지 않는 이상 외우기 어려웠다. 혹은 내 뇌가 불필요한 정보라고 판단해 저장조차 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실제로 난 족보 같은 것에 별로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 집 명절은 앞으로 더 많이 변하지 않을까. 지금도 이미 예전 같지 않지만, 나중에는 명절이라는 개념 자체가 달라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만나고 싶어서 만나는 게 아니라, '만나야 하니까' 만나는 관계가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이번 명절을 보내면서 '가족은 직계까지만 챙기는 것이 적당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척들과도 명절이라서 억지로 만나는 게 아니라, 만날 일이 있을 때 만나면 되는 것 아닐까.


마음의 연결점을 찾을 수 없는 관계를 억지로 유지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는 것이 오히려 관계가 더 건강해지는 게 아닐까 싶다. 단식하면 되려 건강이 회복되는 것처럼.


방구석에 틀어박혀 잠만 자던 큰형들이,

단출하게 가족끼리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이젠 너무나도 이해가 간다.


가족만큼 소중한 존재도 없지만,

가족만큼 골치 아픈 관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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