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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아무것도 모른다

'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면 비로소 보이는 것

by 달보 Mar 22. 2025


처음으로 음악이 들린 날

어릴 적 집에 처음으로 ‘메가패스 ADSL’이라는 인터넷이 연결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게임이 아니라 음악을 듣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TV에서 음악 프로그램이 방영될 때뿐이었다. 좋아하는 노래를 한 번 듣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는데, 인터넷이 깔리고 나서는 원하는 만큼 들을 수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을. 음악은 늘 내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머물던 때였다. 햇살이 눈부신 오후 브리즈번 시티를 걸으며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유독 음악이 귀에 들어오는 느낌이 달랐다. 이전까지는 가수의 목소리만 들리던 게, 그땐 보컬 뒤에 깔린 악기 소리와 비트 하나하나가 세밀하게 들려왔다.


그 순간 불현듯 깨달았다.

‘나는 지금까지 음악을 제대로 듣고 있지 않았구나.’



당장의 행복을 거머쥐는 방법

나는 그동안 눈에 보이면 보고 있다고 생각했고, 귀에 들리면 듣고 있다고 여겼다. 무언가를 경험하면 그에 따른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눈을 뜨고 있다고 ‘보는 것’은 아니었다.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집중해서 들여다봐야 했다. 소리가 들린다고 ‘듣는 것’은 아니었다. 자세히 듣기 위해서는 귀를 기울여야 했다. 어떤 경험을 했다고 순간을 온전히 느낀 것은 아니었다. 겪은 일의 의미를 깊이 곱씹고 사유해야만 진짜 ‘느낀 것’이 되었다. 요컨대 내가 하는 모든 행동에 의도를 가미하지 않으면, 그것은 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사실을 미리 깨닫지 못했다면, 지금처럼 일상을 세밀히 들여다보며 글감을 찾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주변을 주의 깊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같은 거리라도 날씨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을 인지하는 것처럼, 익숙한 공간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발견하려 노력했다.


경청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애초에 제대로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상대방이 말을 하면 ‘듣고 있다’고 여기지만, 실상은 듣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대개의 경우 상대방이 이야기하는 동안에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거나, 다음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인간이기에 겪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 순간 우리는 '현재'에 온전히 존재하지 못하는 것이다. 과거의 기억에 얽매이거나 미래를 걱정하며 잡념에 빠져 있는 상태에서는, '지금'이라는 순간을 충분히 경험할 수 없다. 바로 그 점이 우리가 행복과 멀어지는 이유 중 하나다.


알고 보니 당장의 행복을 거머쥐는 방법은 그동안 수동적으로 해오던 모든 것들을 적극적으로 행하는 것이었다. 뻔한 일상을 깊이 들여다보고, 주의 깊게 듣고, 진심으로 느끼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런 점에서 경청은 단순히 상대방을 배려하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능력이자 순간을 온전히 누리게 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인간은 어떤 것도 완전히 알 수 없다

‘나는 이미 알고 있다’는 생각은 우리를 현재에 온전히 머물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눈으로 봤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떠올려 보면 기억이 흐릿한 것처럼 말이다. 상대방이 이전에 했던 말과 비슷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우리는 흔히 ‘또 같은 이야기네’라고 생각하며 무심코 귀를 닫아버린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순간에만 적용되는 것일 뿐, 모든 것은 매 순간 변한다.


어제와 오늘은 전혀 다른 세계이다. 그 세계를 살아가는 나 역시도 그렇다. 나는 어제의 나와 같지 않다. 심지어 1초 전의 나도 지금의 나와는 다르다.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내 마음가짐이 달라지면 그 말은 전혀 새롭게 들릴 수 있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읽는 시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것처럼, 우리의 관점이 변하면 같은 경험도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


인간의 지식은 한계가 있다. 경험과 정보는 주관적 해석과 한정된 인식 속에서 이루어진다. 인간은 어떤 것도 완전히 알 수 없다.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알고 있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앎과 전에 없던 행복을 맞이할 자격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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