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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나는 글쓰기를 사랑하는가

주제 넘는 욕심이 부른 조급함

by 달보


내가 매일 글을 쓰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결정적인 건 하루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좀이 쑤시기 때문이다. 노트북을 켜고 자리에 앉기만 하면 쓸 수 있는 글감과 쓰다 만 글들이 쌓여 있지만 그래도 글쓰기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마음먹는다고 세상만사가 술술 풀리는 게 아니듯, 시간 내고 각오를 다졌다고 해서 글이 저절로 써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힘들다. 자판에 있는 자음 모음과 백스페이스를 누르는 횟수만큼이나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고, 무력감에 휩싸이고, 평화롭던 마음이 절망으로 젖는다. 하지만 그런 글쓰기를 하지 않는 하루는 나의 시간을 오염시킨다. 아침에 글을 쓴 날은 설거지가 재밌고, 글을 쓰지 못한 날은 로봇청소기 먼지통 비우는 일조차 귀찮다. 글쓰기는 일상의 평화를 좌우한다.


내 마음의 평온은 글쓰기에 달렸기에 글만 쓰면 나는 더없이 무탈했다. 그런데 혹시 글쓰기에 너무 의지한 걸까. 살다 보면, 특히 육아까지 병행하다 보면 글을 쓰지 못하는 날도 생기기 마련인데 나는 그런 순간을 전혀 용납하지 않았다. 인생이라는 게 원래 예기치 못한 일투성이란 걸 진즉에 알면서도 그 변수가 글쓰기를 방해하는 날이면 기분이 금세 가라앉았다. 모든 게 싫었고 짜증났다. 귀엽던 아이를 바라보며 마음이 풀리기는커녕, 오히려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악마의 존재를 느끼느라 여념이 없을 때도 있었다.


나는 웬만하면 오전 중에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었다. 요즘은 결혼 생활과 육아를 핑계로 글쓰기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고 있지만, 사실 돌이켜 보면 하루 종일 단 한 자도 쓸 수 없었던 날은 없었다. 육아를 혼자 도맡은 것도 아니고 아이가 밤새 잠을 안 자는 것도 아니었다. 글쓰기가 일상의 평화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면 쓰려는 마음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짬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침부터 글을 쓰지 못하고 기분의 주도권을 ‘생각’이라는 것에 넘겨버린 날은, 저녁이 되면 그 증상이 심해져 아내의 기분까지 망칠 정도로 내 표정은 굳어 있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모든 건, 아마도 조급해서 그런 걸 거라고.


쥐뿔도 없는 놈이 갑자기 글을 쓰겠다고 나서서는, 다른 사람들이 수십 년 고생 끝에 이룬 성취를 몇 년 만에 얻고 싶어 한 욕심에서 비롯된 조급함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감지한다.


과연 나는 글쓰기를 사랑하는 게 맞는 걸까.


글쓰기로 얻는 그 무언가를,

글쓰기로 얻게 될 무언가를,

글쓰기로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무언가를,

주제넘게 탐하고 있는 건 아닐까.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도를 여행하다 보면 점차 해소될 줄 알았으나 되려 더 메이기만 하는 마음을, 커다란 스타벅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바다를 관통하여 마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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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보가 쓴 책 :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

달보의 일상이 담긴 :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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