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걸까
글을 쓰다 보면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번아웃과 슬럼프 구간이 있다. 그런 시기가 닥치면 글쓰기는 버거워진다. 한참 쓰던 글은 매듭지을 여력이 사라지고, 새로운 글을 시작해도 예전만큼 활력이 솟지 않는다. 시간을 비워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려 두어도 멍하니 앉아 있거나 숏폼 영상을 보고 있곤 한다.
매일 글을 쓸 수 있느냐 없느냐는 나의 컨디션과 직결되어, 슬럼프가 오면 나는 마치 젖은 옷처럼 축 처진다. 그래도 글을 쓰긴 한다. 마음에 없는 글, 예전에 썼던 글의 반복, 부끄러워 공개하지 못할 못된 글까지.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회복된다. 이런 패턴을 몇 번 겪으니 이후 슬럼프가 찾아와도 마치 익숙한 친구를 맞이한 듯 담담해졌다.
그런데 번아웃은 감기처럼 거듭 진화라도 하는 건지, 어느 순간부터 글쓰기가 또 힘들어졌다. 대체 언제부터 스며든 건지 짚이는 구간이 없다. 들이닥치는 타이밍이 점점 매서워진다. ‘아, 또 그놈이 왔구나’라며 넘기기엔 와닿는 무게감이 다르다. 이전엔 배낭을 메고 오르막길을 오르는 나를 뒤에서 끌어내려도 꾸역꾸역 한 걸음씩 옮길 수 있었다면, 지금은 등 뒤에서 잡아당기는 손에 나자빠진 기분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금 이 글이라도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뭐라도 쓰고 있다는 것 자체가 슬슬 먼지를 털고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그럼에도 답답하고 막연하긴 매한가지다. 황금빛 노을이 저문 뒤 은은한 달빛을 머금은 밤하늘이 꼭 내 마음만 같다.
글쓰기를 막 시작했을 때 나는 내가 글을 잘 쓰는 줄 알았다. 그 근거없고 알량한 자신감으로 어떻게든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다행히 주제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글쓰기 책도 읽고, 글쓰기 모임에도 참여해봤다. 그럼 상황은 나아질 법도 한데.
꾸준히 쓰다 보면 부족한 부분이 채워지기도 하지만, 하나가 채워지면 서너 개의 빈틈이 드러난다. 글쓰기에 정답은 없고 꾸준함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믿음은 여전하다.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내 손발을 옭아매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길을 잃은 걸까.
혹은 아예 걷지도 않았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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