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분들께
은유 작가님의 <해방의 밤> 북토크는 작가님에게 궁금한 점을 묻는 시간으로 대부분 채워졌다. 나는 북토크 주제를 벗어나는 점을 감안하고서라도 글쓰기 질문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은유 작가님을 언제 다시 뵐지도 모르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작가님의 필명은 왜 은유인지, 작가님은 어떤 식으로 읽을 책을 고르는지 등의 질문이 오갔다. 한 시간가량 흘렀을 즈음, 더 이상 넋놓고 있으면 아무 말도 못하고 끝날 거란 위기 의식에 떠밀려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작가님은 바로 옆자리에서 입 꾹 닫고 앉아만 있던 나의 반응을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셨다.
"저는 2년쯤 전부터 새벽에 일어났다가 우연히 글쓰기를 시작해 오늘까지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글쓰기가 하루의 기분을 좌우할 정도로 삶에 많이 녹아들었습니다. 그날 양껏 글을 쓰지 못하면 그토록 귀엽던 아이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극심한 자기 검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전의 글쓰기가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느낌이었다면, 요즘은 짐가방을 메고 오르막길을 올라가는데 누가 뒤에서 잡아끄는 느낌이 듭니다. 이럴 땐 어떡하면 좋을지 작가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이에 은유 작가님은 내가 질문하는 동안 살짝 경직된 분위기를 단번에 풀어주는 유쾌한 말로 답해주셨다.
"그걸 왜 저한테 물어보세요!?"
(웃음)
사실 명쾌한 정답이 있는 질문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기에 시원한 대답을 기대하진 않았다. "그건 글쓰는 과정에서 중요한 변화일 수 있다", "그럴 때일수록 글을 왜 쓰는지 상기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막상 들을 땐 그저 그랬지만 그 말들은 꽤나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고, 작가님을 뵙기 전보다는 글 쓸 용기가 좀 더 생긴 듯했다.
한편 글쓰기와 관련된 질문은 내가 처음이었다. 책 <해방의 밤>은 글쓰기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책은 아니어서, 괜히 분위기를 깨뜨리는 게 아닐까 했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오히려 사람들은 이때다 싶었는지 글쓰기 관련 질문을 너도나도 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그들이 던진 질문은 대부분 글쓰기를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들이 흔히 궁금해할 만한 것들이었다. 은유 작가님이 좋은 답변을 주셨지만, 나 역시 그들에게 나름의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북토크에서는 손님의 입장이기에 얌전히 있었으나 브런치에서나마 조심스레 내 생각을 풀어보려 한다. 혹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닿을 수도 있으니까.
Q1. 글쓰기를 해보고 싶은데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는 독서를 통해 내면이 해방되지 않았다면 아마 글도 쓰지 못했을 거라고 본다. 책은 세상의 다양한 본보기를 내게 보여줬고, 그 과정에서 당연한 줄 알았던 것들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전에 알고 있던 것들과 앞으로 새롭게 알게 될 것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고, 그렇게 생긴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글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는 오히려 쓸 게 많았다. 예를 들어 다른 차가 끼어들 때 왜 나는 화가 나는지, 비 오는 날씨를 왜 '안 좋은 날씨'라고 생각해왔는지, 피가 섞였다고 꼭 가족이라 말할 수 있는지 같은 것들. 이 모든 게 글감이 되었다.
정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면,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제목으로 글을 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실제로 나도 글쓰기가 막힐 때 종종 이 방법을 써먹는다. 그렇게 첫 문장을 적으면 글쓰기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그러면서 알게 된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건 사실이 아니라 생각일 뿐이며 그조차도 하나의 글감이라는 것을.
Q2. 글쓰기는 재능과 관련이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글쓰기는 재능과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재능'이라는 단어에 약간의 환상을 갖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재능은 실체가 없다. 그냥 인간이 어떤 결과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만든 말일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재능'이라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 말은 글쓴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연습했는지를 무시하는 표현 같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치열하게 글을 써 온 사람에게 "당신은 재능이 있네요"라고 말하는 건, 그 사람이 쏟아온 시간과 노력을 가볍게 여기는 말일 수 있다.
실제로 누군가가 글을 잘 쓰는 이유를 명확히 아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성공 이유를 확실히 알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대부분의 수작은 수많은 요인이 얽히고설켜 이뤄지기에 단순히 '재능'으로 설명할 수 있는 건 없다.
Q3. 저는 글을 쓰기만 하면 안 좋은 이야기들만 나와서 잠시 멈춘 상태입니다. 이런 제가 글을 계속 써야 할까요?
쓰고 싶지 않다면 굳이 쓸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써보길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지금 나오는 그 '안 좋은 이야기들'이 계속 쓰다 보면 다른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처음엔 내가 읽은 책에서 본 내용을 내 생각인 줄 알고 쓰곤 했다. 그렇게 글쓰기가 쉽다며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글을 계속 쓰다 보니 그런 착각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내 안에 숨어 있던 감정과 생각들을 마주하게 됐고,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됐다.
글을 계속 써야 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당신은 글쓰기에서 멀어지기 힘든 상태일지도 모른다. 슬픈 이야기가 나온다고 해서 그게 '나쁜' 건 아니다. 오히려 그건 솔직한 감정의 표출일 수 있다. 상황에 대해 좋고 나쁨을 나누는 기준 자체가 개인의 관념일 뿐이다. 그런 것들도 글을 쓰면서 조금씩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글쓰기 고민도 여전하다. 하지만 매일 새벽에 일어나 꾸준히 글을 써 온 경험을 토대로, 글쓰기를 망설이는 분들이 고민할 만한 질문에는 이 정도 답은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독서만으로도 충분히 좋지만 독서를 한다면 글쓰기는 반드시 해봐야 한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오늘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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