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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한 손글씨 너머로 보이는 것

by 달보


최근에 참여하게 된 글쓰기 모임이 있다. 여느 모임과는 달리 이곳은 노트북을 꺼내드는 사람이 없었다. 서로 약속이라도 한듯 다들 펜과 종이를 꺼내 들고 글을 썼다. 두 번째 모임까지만 해도 혹시 몰라 가방에 노트북을 넣어갔다. 분위기를 깨는 걸 각오하고 "저, 혹시 노트북으로 글을 써도 될까요?"라고 말하려다 끝내 입을 다물었다. 그러지 못한 두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용기를 내지 못한 탓이었고, 다른 하나는 테이블이 너무 좁아 노트북을 펼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이 모임에서만큼은 손으로 글을 쓰자며 스스로를 달랬다.


글쓰기를 사랑한다고 자부해온 내가, 한때 두꺼운 일기장을 세 권이나 채웠던 내가 손글씨를 피하는 이유는 단순히 귀찮아서만은 아니다. 결정적인 이유는 내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글을 오래 쓰면 손이 아픈 것보다도, 삐뚤빼뚤한 글씨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써내려가는 일이 더 괴롭다.


나는 내 손글씨에서 내 삶을 엿본다. 네모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모양이 불량한 동그라미, 필체 검사를 하면 내가 썼다는 증거조차 남기기 힘들 것 같은 자음과 모음. 기분에 따라 널뛰는 자간과 행간은 나의 감정선과 닮았다. 어설프고, 일관되지 않고, 끝까지 가지 못한 흔적들. 내 글씨는 내가 걸어온 길과 무척이나 닮아 있다.


"글씨 정말 예쁘세요."


글쓰기 모임에서 내 노트를 본 한 분이 말했다. 내 글씨가 못나 보이는 건 나뿐인 걸까. 생각해 보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내 글씨를 예쁘다고 말해왔다. 그럴 때면 나는 대답을 못하고 멀뚱멀뚱 있곤 한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도 그렇고, 정말로 예쁘게 보인다는 게 이해되지 않아서도 그렇다.


요즘은 손으로 쓰는 글은 물론 노트북으로 쓰는 글조차 힘겹다. 슬럼프, 번아웃, 글태기, 어떤 단어를 붙여도 지금의 상태를 온전히 설명하진 못한다. 글을 써놓고도 발행하지 못한 채 쌓아두기만 한다. 2년간 1,000개 가까운 글을 브런치에 발행하면서 이런 무력감을 느낀 건 처음이다.


남들이 괜찮다 하는 내 손글씨를 보며 문득 요즘의 내 상태가 떠올랐다. 혹시 손글씨처럼 남들은 괜찮다는데, 괜히 나 혼자 주제 넘는 욕심을 부리며 내 글에만 깐깐하게 굴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쓰는 글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도 있었기에, 이상하게만 보이지 않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어쩌면 나는 다른 사람이 내 글을 어떻게 보든 상관없이, 내 눈에 성이 차야만 비로소 만족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요즘 내 글쓰기가 왜 이토록 버거운지 조금은 이해가 되는 듯하기도 했다.


망설인다고 달라지는 건 없는데, 멈춘다고 나아지지도 않는데, 끙끙 앓는다고 글이 써지는 것도 아닌데.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는 건 더 많이 쓰는 것이란 걸 알면서도, 현실은 생각과 마음처럼 흘러가는 법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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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보가 쓴 책 :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

달보의 일상이 담긴 :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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