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의 부재는 핑계를 만들어낸다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시절, 함께 일했던 매니저 형이 있었다. 그의 외모는 나와 닮은 구석이 많았다. 꼭 우리 집안 사람처럼 쌍꺼풀 없는 눈매가 특징이었다. 성격은 정반대였다. 항상 웃는 얼굴에 신박한 드립을 시도 때도 없이 날리는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묘한 아우라를 풍겼다. 그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여동생을 스마트폰에 ‘멍멍지랄년’이라고 저장해둔 것이었다.
어느 날, 나는 그 ‘멍멍지랄년’을 직접 만나게 됐다. 매니저 형과 밥을 먹던 중 기타를 배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는 자신의 여동생이 기타를 가르치며 용돈벌이를 하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때를 계기로 나는 한동안 그 누나의 작업실에서 기타를 배웠다. 지인 할인가로 저렴하게 배울 수 있었다.
나는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다. 동성로에 가면 동전 노래방을 종종 들렀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 2차, 3차로 노래방에서 소화를 시키곤 했다. 당시 ‘슈퍼스타K’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한창 유행이었는데,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참가자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내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설렜다.
하지만 막상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니 손가락이 너무 아팠다. 기타줄을 잡고 있으면 손가락 끝마디가 빨갛게 부어올라 다시 잡기가 힘들었다. 아무리 힘을 줘도 원하는 소리가 쉽게 나지 않았다. 반면에 ‘멍멍지랄년’ 누나는 나보다 키도 작고 체구도 왜소한데, 마치 손끝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듯 부드럽게 기타줄을 눌러가며 연주했다.
틈 날 때마다 연습했지만 실력은 눈에 띄게 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예 안 느는 것도 아니라서 쉽사리 포기하진 않았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기타 연습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다름 아닌 손톱이었다.
내 손톱은 끝이 둥글게 튀어나온 편이다. 모양은 예쁘지만, 깎을 때 조심하지 않으면 손톱 밑의 속살까지 잘려나가곤 했다. 엄마에게 손톱을 맡기면 자꾸 속살을 찝는 바람에 어릴 적부터 직접 깎았을 정도였다. 원래도 손톱이 빨리 자란다고는 생각했지만, 기타를 치면서 그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걸 실감했다. 아무리 바짝 깎아도 며칠만 지나면 기타줄이 잘 눌리지 않았다. 손톱이 손가락보다 길어 힘을 줘도 소리가 뭉개졌다. 그러니 기타를 칠 때마다 손톱을 깎아야 했다.
결국 기타를 포기한 이유는 흥미를 잃어서가 아니라, 손톱을 깎는 게 너무 귀찮았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겐 세상에서 가장 귀찮은 일 중 하나가 손톱 깎기였다. 손톱을 깎을 때마다 사방으로 튀는 조각들을 100%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게 늘 신경 쓰였다. 그냥 적당히 깎고 손으로 긁어모아 휴지에 싸 버리거나 청소기를 돌리면 그만이지만, 그게 어쩜 그렇게 번거롭던지. 나의 완벽주의 성향은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도 나를 옥죄었다.
그런데 훗날, 글쓰기를 평생의 업으로 삼겠다고 다짐하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나는 손톱을 깎는 게 귀찮아서 기타를 포기한 게 아니었다. 사실은 기타에 그다지 흥미가 없었을 뿐이었다. 결국 다 핑계였던 거다. 왜냐하면 지금은 글을 쓰기 위해 가방에 손톱깎기를 넣고 다니기 때문이다.
손톱을 짧게 정리하면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손맛이 확연히 다르다. 오타율도 줄어든다. 반면 손톱이 긴 상태에서 키보드를 누르면 마치 누군가 옆에서 내 손을 계속 건드리는 듯 방해받는 기분이 든다.
지금도 여전히 손톱을 깎을 때마다 찝찝한 기분이 들긴 한다. 바닥에 흩어진 손톱 조각을 휴지로 쓸어 담고, 청소기로 빨아들여도 어딘가에 잔해가 남아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바짝 깎인 손끝으로 키보드를 두드릴 때의 쾌감을 위해 그 정도 불편함은 기꺼이 감수한다.
손톱깎기의 여부는 그날의 글쓰기 텐션을 좌우한다. 내게 손톱 길이는 그만큼 중요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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