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전만 회수할게, 잠깐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 '잠깐'이 얼마나 길어질지 몰랐다.
그 형님을 만난 건 브리즈번 시청 맞은편에 있는 Lexis 어학원에서였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 레벨 테스트 결과와는 무관하게 초급반에 들어갔다가 만나게 되었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이목구비가 또렷했지만, 우락부락한 몸과 다소 작은 키가 남자답게 잘생긴 외모를 가리는 것 같았다. 당시 학원 분위기상 한국 사람들끼리는 좀처럼 친해지기 어려웠는데, 그 형님과는 고향이 같다는 이유로 빠르게 가까워졌다. 고향이 같다고 해서 남다른 동질감을 느끼지 않는 나완 달리 그는 유독 나를 반가워했다.
쉐어하우스 룸메이트들과의 사이는 좋았지만 바깥에서 만난 친구는 여전히 없었던 나는 그 형의 접근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우린 알게 모르게 서로를 조금씩 의지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만났으면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법한 사람이, 외롭고 낯선 땅에서 만나서 그런지 별의별 이야기를 다 해줬다. 가뜩이나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최고조에 이르고, 도대체 이 세상을 잘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가 좀 알려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던 시기였기에 나보다 앞서 10년을 산 사람의 경험담을 듣는 일은 꽤 쏠쏠했다. 최소한의 여비를 들고 경험 삼아 호주 땅을 밟은 나완 달리, 그 형은 다년간의 직장생활로 모은 수천만 원의 목돈을 들고 호주에 온 것이었다. 나이 차는 꽤 났어도 이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비슷했다. 그간 만나온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목돈이 목적이었다.
혼자였다면 절대 가지 않았을 법한 곳들을 많이 다녔다. 학원 친구들과 주말마다 벌이는 파티에도, 영어를 잘 못해도 스스럼없이 다가가 척척 말을 붙이던 그 형 덕에 나도 덩달아 낄 수 있었다. 얼굴에 클럽이 없는 내가 그 형 따라 한국에서도 가지 않던 클럽에 가보기도 했다. 클럽 안엔 동양인 여성들이 많은 데 비해 동양인 남성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 불균형의 이유는 금세 알 수 있었다. 덩치도 키도 작은 나를 깔보는 듯한 표정을 짓거나 툭툭 치고 지나가는 외국인들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클럽보다도 더 생소한, 평생 한 번도 가볼 일 없을 줄 알았던 카지노에도 그 형 덕에 가보게 됐다. 카지노 내부는 그야말로 휘황찬란했다. 화려한 조명, 근사한 인테리어에 시선이 끌렸다. 그 커다란 공간에 시계와 창문이 단 하나도 없는 건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돈이 많지 않아서 최소 금액만 칩으로 바꾼 뒤 가장 쉬워 보이는 룰렛을 몇 판 해봤다. 당연히 돈은 금세 잃었고 흥미도 같이 사라졌다. 만약 돈을 땄어도 큰 감흥은 없었을 것 같았다. 어차피 따봤자 또다시 돈을 걸 것이고, 하다 보면 결국 다 잃을 수밖에 없는 시스템인 것을 그 어린 나이에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카지노 같은 건 애초에 내 취향이 아니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 영화 타짜의 영향으로 섯다가 유행했을 때도, 나는 교실에서 혼자 딴짓할 정도로 도박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 사이 사라진 대구 형님을 두리번거리며 찾아보니 '바카라'라는 게임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의 안색은 좋지 않았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형님, 좀 땄어요?"
돈을 땄을 리 없는 얼굴을 못 본 척하며 물었더니, 상상도 못 한 대답이 돌아왔다.
"한 몇 천불 잃었어."
뭐? 들어온 지 10분도 안 된 것 같은데 몇 천 불을 잃었다고? 수백만 원을 그 짧은 시간에 날렸단 말인가?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표정을 보아하니 당연히 돈은 잃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과연 내가 몇 분 만에 몇 백만 원을 잃었다면 자리를 쉽게 뜰 수 있었을까. 자신 없었다. 그럼에도 난 그를 일단 말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형님, 언제까지 하시게요?"
"본전만 회수할게, 잠깐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고개를 꿈쩍도 않고 단호하게 말하는 그를 말릴 수 없다는 건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형님 그럼 저 먼저 갑니다."라고 말하자 그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카지노를 나왔다. 부디 더 이상 크게 잃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길 바랐다. 하지만 왠지 그럴 것 같지가 않다는 섬뜩한 예감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다음 날, 형님은 학원에 오지 않았다. 혹시 밤이라도 샌 건가, 그래도 내일은 오겠지 싶었다. 하지만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걱정이 들어 연락을 해봤지만 답장이 없었다. 나와 친하게 지냈던 걸 아는 선생님들이 그의 근황을 물었을 때 카지노에서 본 게 마지막이라고는 차마 말할 수가 없어서, 그저 나도 모르겠다며 둘러대곤 했다.
'이제 집에 왔어.'
그에게서 연락이 온 건 사나흘쯤 후였다.
이제 집에 왔다는 그 일상적인 대답이 그렇게 이상하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무사한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바로 그의 쉐어하우스로 찾아갔다. 거실에는 디귿자로 소파가 놓여 있었는데, 그는 잠옷에 목욕가운을 걸친 채 그 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나를 맞으며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이던 그의 얼굴은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허망해 보였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그동안 어디 있었냐며 캐묻자 그는 좀처럼 믿기 어려운 말을 꺼냈다. 그날부터 계속 카지노에 있었고, 같은 자리에 앉아 잠도 자지 않은 채 게임만 했으며, 중간에 몇 번은 큰 돈을 따기도 했지만 결국 전재산 가까이를 잃었다는 것이었다. 날이 지나가는지도 몰랐단 말을 들었을 땐 순간 그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느껴졌다. 대체 어떻게 잠도 안 자고 며칠을 버텼을까. 카지노에 창문과 시계를 두지 않는 이유와 효과를 뼈저리게 실감한 순간이었다.
"나 공장으로 돈 벌러 가."
"예? 학원은요?"
20대 청춘을 바쳐 모은 수천만 원을 단 며칠 만에 잃은 그는 자포자기한 얼굴로, 어느 도축 공장에 곧 일하러 간다고 말했다. 학원 등록 기간이 아직 많이 남았지만 더는 다닐 상황도 아니고 그럴 정신도 없다면서. 전재산을 잃은 그의 상황이 여전히 믿기지는 않으면서도, 굶어 죽지 않으려면 당장 돈을 벌러 가야 한다는 말은 금세 납득이 됐다.
호주에 있는 동안 자주 보며 더 친해질 줄 알았던 그 형님과의 인연은 거기서 끝이었다. 분명 그와 함께 했던 다른 추억도 많았을 텐데 그를 생각하면 카지노밖에 떠오르질 않는다. 그 일이 있은 후 누군가에게 그의 이야기를 해줬더니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카지노 가면 바카라만 하고, 바카라에서 인상 쓰고 있으면 대부분 코리안이래."
하필이면 그 카지노는 학원 바로 맞은편에 있었다. 그가 떠난 뒤로 학원에 갈 때마다 카지노 쪽으로 시선이 향했고, 전에는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카지노를 둘러싼 쇠꼬챙이 울타리 아래엔 모든 걸 잃은 사람처럼 보이는 이들이 대낮부터 쓰러져 있었고, 울타리 안쪽의 수로로 보이는 구덩이에도 죽은지 아닌지 알 길이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예전엔 전날 과음하고 길에 퍼질러 자는 사람들인 줄 알았지만, 이젠 차라리 그쪽이 훨씬 나아보일 정도로 절망에 빠진 것만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어차피 나는 누가 내게 공짜 돈을 쥐어주어도 카지노에 가지 않을 사람이지만 괜히 경각심이 일었다.
사람은 왜 도박에 중독될까. 왜 어떤 사람은 스치기만 해도 귀신에 홀린듯 빨려들어가고, 왜 어떤 사람은 애초에 그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는 걸까. 타고난 성향 때문일까, 혹은 정해진 운명 같은 걸까. 직장생활을 굳이 해보지 않아도 수천 만원을 모으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체감이 가는데, 그 피같은 돈을 모조리 쏟아붓는 마음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왠지 모르게 부모님에게 감사했다.
그 형님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얼척없는 과거의 실수를 딛고 지금은 잘 살고 있을까. 혹여 또다시 도박에 빠지지는 않았을지 지금 이 순간에도 불현듯 그런 걱정이 스며든다. 이제는 그때의 그보다 몇 살 더 많은 나이가 되어 보니, 그가 호주에 오기 전까지 차곡차곡 모았다는 그 돈이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더욱 크게 와닿는다. 바라건대, 지금은 갖은 유혹으로부터 벗어나 떳떳하게 잘 살아가고 있기를.
CONN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