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햄버거집 알바

쿠키 2

by 달보


군대를 전역하고 왜 하필 맥도날드 알바를 알아보게 된 건지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근무 시간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 이유였던 것 같기도 하지만, 알바 경험이 전무했던 그 시절의 내가 그런 정보를 어디서 알았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살면서 해 본 일이라곤 고등학교 때 오토바이가 타고 싶어 시작했던 피잣집 배달 알바뿐이었다. 누군가 나를 지키기 위해 오토바이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만들려 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배달 일을 시작한 뒤 15일 내내 단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내렸다. 그렇게까지 연속으로 비가 내린 건 내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아무리 왼발로 기어를 바꾸고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당기며 도로 위를 질주하는 재미가 쏠쏠해도, 보름 내내 우비를 뚫고 바짓가랑이가 흠뻑 젖는 고생을 하고 나니 오토바이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 내가 어쩌다 패스트푸드점 알바를 알아보게 됐을까. 내가 일했던 곳은 집 근처의 동네 매장이었지만, 처음부터 그곳을 지원한 건 아니었다. 원래 내가 지원했던 곳은 사람들이 붐비는 시내 매장이었다. 그곳에 가야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고, 경험이 전무한 내겐 그게 큰 장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동네 매장을 지원한 건 단순히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시내 매장으로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뜻밖의 말을 듣게 됐다.


"OO점에서 면접을 보셨네요?"


나는 다른 곳에서 면접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면접만 본 게 아니라 아예 입사 확정까지 되어 있다는 이야기에 어안이 벙벙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었을까. 집 근처에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지, 정확한 위치조차 몰랐던 그곳에서 내가 면접을 봤을 리는 없었다. 일단 그렇게 처리되었으니 한번 가보라는 담당자의 말에 속는 셈치고 한 번 들러 보기로 했다.




자신을 매니저라고 소개한 사람은 기세가 대단했다. 맥도날드가 낳은 딸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애사심이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나는 이곳에서 면접을 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합격 처리가 된 건지'를 비롯한 그 어떤 질문도 대답도 받을 생각이 없어 보였고, 당장에라도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오라할 것처럼 나를 밀어붙였다. 마치 내가 이미 이곳에서 일하기로 결정한 사람이라도 되는 듯, 매장 구석구석을 안내하고 당시 근무 중이던 직원들에게도 인사를 시켜주었다. 그렇게 나는 의도와는 다르게 시내쪽이 아닌 동네 매장에서 등떠밀리듯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마침 시내 매장을 둘러본 후라 은근히 비교가 됐는데, 내부 구조나 분위기 면에서 오히려 동네 매장이 더 나아 보였다. 그런 점도 마음이 기운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땐 뭐가 뭔지도 모른 채 그렇게 일하게 되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결과적으로 참 잘된 일이었다. 그곳에서 난 정말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 소식이 끊겼지만, 그때만큼은 누구보다도 뜨겁게 어울리며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 출근하는 게 기다려질 만큼 매장에선 웃고 떠들며 즐겁게 일했고, 일이 끝나면 동료들과 맞은편 술집에 들러 청춘의 고단함을 달래고 서로의 고민을 공유했다.


그 와중에 함께 일하던 동료에게 고백했다가 차여 보기도 하고, 그 일을 계기로 첫사랑을 만나기도 했으며, 그 첫사랑과 헤어진 후 이별의 쓰라람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인연과 연인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경험해보니 다른 것보다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중요했다. 다른 매장에 갔더라면 더 바쁘거나 더 여유로웠을 수는 있어도, 그만큼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시간들을, 그곳에 가게 됨으로써 보낼 수 있었던 건 아닐까.


게다가 막상 일해보니 시내 매장을 가지 않은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싶을 만큼, 바쁠 땐 업무 강도가 어마무시했다. 런치 타임 때 밀려드는 손님들을 상대하고 나면 온몸의 기운이 빠질 정도로 정신없이 움직여야 했다. 인적이 드문 한적한 동네가 이럴진대, 하루종일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시내 매장이었다면, 동료들과 농담 따먹기 할 시간도, 일이 끝난 후 술 한잔 기울일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살면서 겪는 우연들이 정말 우연일까.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도 기막힌 서사와 설정들이 내 주변에 존재했다. 당시에는 어리둥절해서 실감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른 뒤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싶을 만큼, 개별적으로 보이는 갖가지 사건들은 알고 보면 서로 정교하게 맞물려 있을 때가 많았다.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이 자주 든다. 내가 있을 곳이라면 어떻게든 그곳으로 가게 되어 있고, 내가 하게 될 일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하게 될 것이라고.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던 고등학교 행정실로 이직한 것도 그렇고, 지나간 과거의 어디를 뒤져봐도 도무지 접점을 찾아볼 수 없는 글쓰기를 인생의 과업처럼 여기고 있는 지금의 나를 봐도 그렇다. 인생이란 게 참 더디지만, 그 이상으로 흥미롭다.


그래서 점점 더 모든 일에 덤덤해지는 건 아닐까.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단단해지는 게 아니라, 눈앞의 일들을 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무던해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살다 보면 별별 일이 다 일어나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결국 그렇게 될 일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허탈하긴 해도, 마음을 다잡고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따라서 요즘은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글쓰기로 생계를 이어간다는 게 참 어렵고 버거운 일이긴 하지만, 만약 그 길이 정말 내 길이라면 어떻게든 걸어가게 되지 않을까. 물론 될 수 없을지도 모르지. 그러니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쓰고 쓰고, 또 쓰는 일뿐이라는 것. 여태껏 그래왔듯이.


삶이라는 복잡하고도 다층적인 세계가 실은 누군가가 정교하게 설계한 연극일지라도 난 괜찮을 것 같다. 최소한 다가오는 일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할지는 오롯이 나의 자유이니까. 설령 한 사람이 지닐 수 있는 태도마저 한정되고 조작된 것이라 해도 어쩔 도리는 없겠지. 정말 그렇게까지 정교하게 짜인 구조라면, 그저 이런 세계를 설계한 존재에게 감탄과 존경을 표할 수밖에.


몸은 좀 고달플지언정 20대 청춘이 할 수 있는 최적의 알바는 패스트푸드점처럼, 젊은 사람들이 모여 있고 근무 시간도 유연한 그런 곳이 아닐까 싶다. 훗날 내 아들이 20대에 알바를 하게 된다면, 아마 나는 맥도날드를 조심스레 추천할 것만 같다.




CONNECT

달보가 쓴 책 :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

달보의 일상이 담긴 : 인스타그램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