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삶을 살고 있나요

알고리즘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by 달보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장사가 잘 될수록, 나이가 들수록 자신이 원하는 것만 보느라 세상이 어떻게 바뀌는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그러다 한 방에 훅 간다. 요즘 스마트폰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 책 '에디톨로지'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만 볼 줄 아는 능력, 세상 모든 것을 보는 능력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뭘 골라야 할까. 김정운 작가는 자기가 보고 싶고 원하는 것만 보고 살면 시대의 흐름에 뒤처진다는 부분을 꼬집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난 유독 이 문장에서 '원하는 것만 보는 것'이라는 게 가슴에 남았다. 요즘은 오히려 원하는 것에만 몰두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다들 자기가 원하는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내 생각엔 선택 자체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드물다. 하루의 대부분을 온갖 콘텐츠가 선물하는 알고리즘이라는 파도에 휩쓸려 살아가는 사람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한다고 생각하며 하고 있는 대부분의 활동들은 세계 최고의 지식인들이 만들어 낸 공간에 갇혀 허우적대는 것에 불과하다. 자신이 원한 적도 없었지만, 원한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취미가 '킬링타임'이다. 현실로 돌아오면 자신이 선택해야 하는 순간을 마주하기 때문에 어떡해서든 가상 세계로 빠져 들어가려고 안달이 나있다. 그리고 가면 갈수록 제작자들은 더욱 퀄리티 높고 몰입감 있는 작품들을 만들어낸다. 만들어내는 자들의 품질이 올라갈수록 소비하는 자들의 삶의 질은 떨어진다. 빈부격차가 점점 심해지는 이유는 이런 대목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난 이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요즘엔 오히려 '원하는 것만 볼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집중력에 관한 얘기이기도 하다. 어떤 것에 대해 집중하고 몰입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이미 성공해 있거나,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살고 있다. 사람들과 딱히 어울리지 않는다.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도 솔직히 어떤 욕구에 대한 충족이 성립되기 때문에 유지하는 것이지, 그 취지가 소실되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왜 시대의 현자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 그토록 얘기해 왔는지 알 것 같다. 삶의 목적, 살아가는 이유가 있어야 '원하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더라도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뿌리내릴 공간이 없는 나무 심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현대인들의 문제는 현답이 담긴 격언들을 화장실만 가도 목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나 흔해빠진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비밀이 어딜 가도 붙어있는 스티커 딱지에 실려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로지 받아들이는 여유를 가진 자와, 항상 배우려는 자들에게 모든 기회를 다 떠넘긴다. 하지만 대단한 비밀은 그 흔해빠진 문장들에 깃들어있다. 통찰력이 출중한 사람은 굳이 세계적인 명언이 아니더라도 어떤 곳에서나 우주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이 넓은 세상이 결국 하나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뭔가 대단한 이유가 있어야 움직이고, 뭔가 대단해 보이는 사람의 조언만 따르려고 한다면 평생 지금처럼 살아갈 것이 분명하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은 자기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본인이 한 명의 위대한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면, 스스로 배우려 할 것이고 그건 곧 인생의 질이 높아지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난 오히려 요즘 세상은 자기가 진정 원하는 것만 볼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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