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흐름은 막을 수 없다
아빠는 강(強)인공지능이 스스로 학습하고 발전하면서 심지어 다른 인공지능 로봇을 설계까지 하는 시대를 막아야 한다고 했다. 다른 연구자들은 아빠와 의견이 달랐다. 특히 한때 아빠와 절친했던 김 박사는 그날 저녁 내내 아빠와 각을 세웠다. “그건 막을 수 없어, 최 박사. 과학은 언제나 그랬어. 상상한 것은 결국 다 현실이 돼.” “그러니까 막아야지. 인공지능의 폭주는 결국 인류의 종말로 이어질 거야. 우리는 인간이지 기계가 아니야.”
난 김박사와 같은 입장이다. '시대의 흐름은 막을 수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떤 경지에 다다르면 항상 그 이상을 생각하고 상상하는 동물이다. 그리고 상상하는 것들의 대부분을 이루어내는 존재다. 아마 그 끝이 종말이라 할지라도 인간은 마지막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인간은 비로소 끝을 보고 나서야 후회를 하거나 욕망이 사그라들 것이다. 최박사는 로봇이 로봇을 설계하는 시대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본인의 존재 자체가 자신의 주장과는 동떨어져 있다. 자신의 생각은 그런 시대를 막아야 한다고 하지만 그런 로봇을 만드는 데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는 건 본인이기 때문이다. 최박사의 존재 자체가 로봇이 로봇을 설계하는 시대를 더욱더 촉진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모순적인 존재다. 예컨대 지구환경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도 자신이 하는 행동의 어디까지가 환경을 위한 것이고 아닌지를 판가름하기 어렵다.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도 일상생활을 하면서 환경을 파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의 존재 자체가 환경에 좋지 않다. 세상이 환경을 고려하기엔 문명이 너무 발달해버렸다. 인간은 환경을 고려하기엔 너무나 이기적인 존재다. 현대인들은 굶어 죽을 일이 거의 없다. 대신에 인간을 위한 그 많은 식량을 확보하는만큼 지구는 데미지를 입는다. 환경을 정말 생각한다면, 이전처럼 끼니를 구하지 못해 굶어죽을 일이 많았던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수도 있다.
잠시 쉬어갈 수는 있다. 한동안은 느려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결국 끝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우주가 팽창하는 것만큼 날로 커져만 갈 것이다. 인간의 행보는 끝없는 전진만이 이루어질 뿐이다. 영혼의 출처가 불분명한만큼 이런 욕망의 끝도 어떻게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흐름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나는 그런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억지로 흐름을 통제하려는 것보다는 그런 흐름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흐름의 DNA는 나의 내면에도 분명히 깃들어있을 것이다. 세상을 알면 나를 알고, 나를 알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우리는 결국 '하나'의 범주에 속하는 존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