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은 자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by 달보
우리가 개를 개라고 할 때도 개의 형태를 지칭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노루와의 차이를 얘기하는 거라네. 명명은 약속된 기호야. 전쟁 중에 종로가 폭격당해서 건물이 다 쓰러져 없어져도 우리는 그곳을 여전히 종로통이라고 불러. 그게 언어고 우리는 언어를 기반으로 생각을 하는 거야. 정리하자면 물질 그 자체가 언어가 아니라 차이의 의미가 언어란 말일세.
- 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중에서




이어령이라는 이름은 책 제목 때문에 처음 알게 됐다. 그마저도 와이프가 밀리의 서재에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을 추가해 놔서 보게 됐다. 하지만 처음 봤을 때부터 왠지 이 책은 읽어야 할 것 같다는 울림을 느꼈다. 처음 몇 페이지를 읽고 나니, 조금 걱정되기 시작했다. 책 전체를 필사해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어령이라는 사람이 뭐 하는 사람인지 누구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느낌은 강하게 와닿았다. 현자가 뭔지도 잘 모르면서 이 사람은 현자라는 생각이 강하게 일었다.


이어령 선생님은 자신이 살아왔던 세상을 우주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자였다. 그리고 한 명의 진정한 싱킹맨이었다. 사유하지 않은 죄명을 씌울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외로운 사람이었다. 책 내용 중에서 자신의 강의가 인기는 많았지만, 정작 기념일 같은 날이 되면 꽃다발은 정작 다른 사람이 받는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 부분에서 정말 동질감을 느꼈다. 나도 왕따 한 번 당한 적 없이 어딜 가도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지만, 정작 친한 사람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어령 선생님을 어려워했고, 내 주변 사람들도 나를 쉽게 바라보진 않았다. 그리고 이어령 선생님도 나도 둘 다 진지했다. 사람들은 그런 기운을 부담스러워하고, 다가오기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 경험상 차라리 조금 외롭더라도 내 생각을 고수하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더 행복했다. 아마 이어령 선생님도 그런 태도를 지니지 않았을까 감히 생각해 본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 들어있는 내용은 하나같이 다 심오하다. 어떤 주제를 가져오더라도 이어령 선생님의 생각에 들어가면 벌거벗은 원숭이처럼 그 실체가 다 까발려져 본질이 드러나게 돼있다. 통찰력의 끝판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질을 꿰뚫어 보는 능력에 감탄하면서 그 능력을 뺏어오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난 물욕은 전혀 없으나, 내적인 스킬에 대한 탐욕은 강한 듯하다.


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내용이 정말 딥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접한다면 많이 당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루는 주제에 비해 부드럽게 잘 읽히는 책이었다. 단지 이어령 선생님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알아차리느냐가 관건이다. 나도 한 명의 읽고 쓰고 사유를 거쳐 기록하려는 자로서 이어령 선생님의 발자취를 밟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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