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질은 무슨 색일까

초록색으로 시작하는 글

by 달보


keyword, 초록색

어릴 땐 왠지 빨간색을 좋아했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레드컬러를 걸치고 다녔었다. 색상에 꽂히는 일이 잘 없던 나는 희한하게 그때 그 시절엔 빨간색을 그렇게 좋아했다. 하지만 이젠 초록색을 좋아한다. 편안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벚꽃 시즌에도 난 벚꽃이 지고 난 후의 초록색 물결을 혼자서 기다린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젊은 시절 패기의 한계를 느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부턴가 편안함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며 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빨간색을 좋아했을 때처럼 옷을 그린컬러로 두르진 않는다. 옷은 이제 그냥 무채색 계열만 입고 다닌다.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빨갛던 그때 그 시절을 뒤로하고 초록계열의 세계로 진입하는 나. 이다음은 어떤 색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리고 빨갛기 이전의 나는 어떤 컬러의 세상을 살고 있었을까. 왠지 생의 마지막엔 내가 태어났을 때의 그 컬러의 세계로 마감하지 않을까.


색깔에 대한 생각을 하니 인간의 본질은 무슨 색일까 하는 호기심이 일었다. 하얗고 싶은 검은색일까, 하얗지만 검은색으로 돌아가는 존재일까.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의 본질은 검은색일 것 같다. 인간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온통 시꺼먼 우주에서 온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빛이란 어떤 작용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현상인 것 같다.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온통 하얀 바탕의 존재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얗게 태어나지만 이런저런 색감을 더해가며 다시금 검은색으로 돌아가고 있는 그런 존재.


인간의 시작과 끝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현재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하얗지도, 검지도 않은 저마다의 색감을 가진 존재들이라고 생각한다. 컴퓨터 작업을 하다 보면 가끔 다루는 컬러색상표와는 비교도 안 되는 다채롭고 각기 다른 고유한 색감들이 지구라는 동그란 공간에 모여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세상은 온갖 다양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다행이다. 어딜 가도 신기한 점이 많고, 누굴 만나도 배울 점이 많다. 대충 보면 비슷한 사람들이 자세히 보면 너무나도 다른 존재라는 것을 매번 실감한다. 그래서 나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도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사람들을 잘 만나지 않는 것에 비해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건지, 세상 자체가 궁금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초록색이라는 키워드 하나를 가지고도 이렇게 글이 뻗어나가는 걸 보면 실은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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