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했던 지난날들을 돌아보며
예전에는 인간관계를 통해서 얻는 기쁨이 크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난 사람들과의 만남을 나서서 주도하였고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최대한 아깝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턴가 뭔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허무함, 공허함 같은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후로는 책을 읽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의 비중을 높여가기 시작했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줄어들수록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나 혼자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사람들을 만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얻을 수 있었던 감정들은 혼자 있음에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혼자 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더 많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혼자 하는 것은 모든 면에서 효율이 좋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비용을 아낄 수 있었던 게 영향이 컸다. 그렇게 난 사람들과 서서히 멀어져만 갔다. 내가 그토록 끌어모으던 사람들을 만나지 않게 되면서 고독할지도 외로울지도 모르는 삶 그 한가운데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만약 나를 지켜보는 관찰자가 있다면 날 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내 하루는 그저 읽기와 쓰기로 이루어져 있다. 수많은 인간관계들로 가득 채웠었던 나의 일상은 이젠 나만의 깊은 사유의 시간들로 채워나가고 있다. 나도 가끔 외롭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언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애써 기억해 내야 할 정도로 아주 가끔 한다. 비록 혼자일지라도 외롭다는 생각을 할 틈도 없이 할 게 정말 많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얻는 충족감은 언제나 끝없는 공허함이 항상 뒤에 따라왔다. 그리고 그런 공허함은 또 다른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내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느낌이 들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사실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건 아주 찰나의 순간에 불과하다. 그 외의 나머지 시간은 가면도 자주 바꿔 써야 하고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여 봉사정신을 발휘해야 할 때도 있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연락하는 애프터서비스까지 신경 써야 한다. 난 멀리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일순간에 타버리고 마는 휘발성이 강한 것은 내 주의를 그다지 끌지 못한다. 만약 내가 아무리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발견하더라도 그것이 반짝하고 사라지는 것이라면 난 금세 다른 것을 찾아 나설 것이다. 난 욕심이 많아서 본질적이고 영원한 것을 좋아한다. 혼자 있으면 오로지 나만을 위한 생각과 나만을 위한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깊은 공부와 성장은 비로소 혼자일 때 진정으로 가능한 것이다. 이런 생각이 점점 강해지다 보니 요즘은 사람 만나는 일이 손에 꼽는다. 지난 연말엔 가장 친한 친구들과 딱 한 번 본 것이 내가 참석한 모임의 전부였다.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을 뒤흔들 만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굳이 내가 어떤 것을 주지 않아도, 그저 나와의 관계 그 자체를 존중하는 사람들이 있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가면을 쓸 필요도, 그 어떤 봉사정신도 발휘할 필요가 없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난 그런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들은 내가 유일하게 나만의 시간을 쪼개면서까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들과의 관계는 내게 편안함을 안겨준다. 그리고 내게 색다른 사유를 할 수 있게끔 마음의 여유를 만들어준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인간관계에 대한 끈을 완전히 놓지 않을 수 있었다.
나처럼 혼자 지내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도,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더욱더 좋은 에너지를 얻는 사람도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 결국 자기 삶은 혼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지향하는 삶의 방향과 관계를 통해 에너지를 얻는 방식 그리고 루틴 다를 뿐이다. 나 같은 경우도 나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고 하였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 혼자 있는 것도 아니다. 내 생각이 나라는 존재를 느끼고 관찰하며 1:1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나 혼자만의 시간은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나를 지켜보는 관찰자가 나와 소통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난 '나'를 지켜보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강하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