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이 되는 방법

내안에 잠들어 있는 존재

by 달보


여태껏 살아온 내 삶이 사실 아무 의미도 없었던 거라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의미는 사실 내가 직접 부여하는 것이지만, 무의미하다는 것도 내가 부여한다면 언제든지 성립이 될 것만 같다. 기억이라는 게 생길 즈음부터 부모님에게 사랑받고, 혼나기도 하고 그랬던 시절. 친구들과 어울리며 공부도 하고 신나게 놀기도 했던 그런 날들. 사회로 진출해서 열심히 살아왔던 흔적들. 이 모든 것들은 내게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건 내가 그렇게 정의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모든 것들은 내 생각이 바뀌기만 하면 스위치를 끄듯이 무의미한 것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그런 것들을 무의미했다고 인정한다면 그건 좋지 않은 것일까.


사실 성인이 된 이후로 갖고 있던 관념들의 변화는 일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책을 읽게 되거나, 잊지 못할 사건을 경험하거나, 정말 운이 좋게 주변에 훌륭한 멘토가 있는 정도라면 충분히 생각이 변할 수 있다. 난 운이 좋게도 책을 만나고 나서 내 모든 생각을 뒤집을 수 있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난 내 생각들이 무의미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알고 있던 생각들은 모두 외부에서 들어온 생각들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내 의지와는 관계가 없던 것들이었다. 그래서 난 어릴 때부터 뭔가 뒤틀린 것만 같은 찝찝함을 느끼면서 자라왔다. 하지만 순간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했을 뿐 그것이 내게 어떤 신호를 전달하는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난 내게 의지하지 못했다. 내 생각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의 생각들을 내 생각이라고 믿고 살아왔으니 또렷한 주관이 없었다. 단지 남들 따라 하기에만 바쁘고 기분이 좋을 땐 남들을 잘 따라 했을 때고, 기분이 안 좋을 땐 남들과 달리 혼자 튈 때였다. 내가 만약 기분이 안 좋다는 감정을 잘 해석할 수만 있었다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내 생각들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럴 시도조차 하지 못한 채 20년이나 넘는 세월을 그저 '나'를 방치한 채 살아왔다.


니체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려면 생각 자체를 바꾸라고 한다. 무언가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태도에서 벗어나 오직 자기 자신만을 의지하라고 말한다. 진정한 나로서 살아가는 것은 니체가 제시한 '초인'으로서의 삶이다.

난 초인으로서 살아가려고 한다. 초인이라는 단어가 뭔가 대단한 것처럼 느껴지게 하긴 하지만 사실 별 거 없다. 단지 생각의 흐름을 바꿔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게 하여 살아가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자신만을 의지하며 스스로의 생각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초인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의 수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아마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만 의지하고 다른 것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가졌다면 반대의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니체의 말에 빌리자면 난 초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자 매일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매일 글을 쓰면서 나의 내면에 숨어있는 부분들을 조금씩 발견한다. 글을 쓰기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들이 글로 써지기도 하고, 매일 비슷한 생각들이 써지기도 한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같은 표현방식으로 써 내려간 적은 없다. 아마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인간들의 소통방식인 단어로서 써 내려가기 때문에 그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내 감정과 기분,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은 글로써도 정확하게 묘사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글로써 정확하게 묘사하지 못한다는 것은 내가 아무리 비슷한 글을 써 내려가더라도 내가 그 당시에 느끼는 감정과 기분은 완전히 다른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제의 일기장에 '기분 좋다'와 오늘의 일기장에 '기분 좋다'는 단어로써만 같을 뿐이다. 어제의 글을 쓸 때와 오늘 글을 쓸 때의 상태는 분명히 다르다. 그래서 내가 매일 비슷한 글을 쓴다고 하더라도 그건 내가 그렇게 느끼기 때문이지 실제로는 다를 것이라고 믿는다. 글도 세상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기 편하게끔 정한 규칙 중 하나이지 이런 문자그림들은 인간의 마음을 모두 담아낼 수 없다.


난 평소에 단어의 프레임으로부터 갇히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단어가 전하는 뜻의 본질은 단어 자체에 있지 않다. 인간의 뜻 또는 상태나 상황의 전달에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단어가 주는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단어나 문장 너머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생각을 하려면 단어 자체의 본질에 대해서 충분히 사유해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어느 명확한 한계 그 어딘가에서부터 나아가지 못한 채 살아갈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남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기 자신인 나에게 의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내게 질문하고 나와 함께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존경하는 가장 훌륭한 스승은 바로 나 자신이다. 오직 나만이 내게 진실된 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닌 자들이 내게 주는 현답은 그저 그들의 생각일 뿐이다. 아무리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멘토라 할지라도 그들은 '나'를 잘 모를 수밖에 없다. 인간은 저마다 고유한 코드가 있다. 그래서 사실 누가 누군가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성립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가르치거나 전달하는 자들은 상대방에게 힌트만을 전할 뿐이고, 깨달음은 온전한 당사자의 몫이다.


나처럼 책을 만나지 못했거나, 주변에 멘토도 없고, 딱히 다른 생각할 여유가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본인 안에 잠들어 있는 초인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아마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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