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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Feb 23. 2023

아이들은 잘못이 없다

문제는 어른이다


난 아직 주니어가 없다. 직접 아이를 키워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진정한 부모의 마음은 아직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때 내가 목격한 현상이 뭔가 이상한 건 확실했다.





아이는 죄가 없다

사실 난 아이들에게 큰 관심이 없다. 내 친구들의 아이도, 나와 가까운 친인척들의 아이도 그저 귀엽다고 생각만 할 뿐 그 이상의 관심은 가지 않는다. 놀아주고 싶지도 않고 용돈을 주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난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보단 내 친구나 가족들이 필요한 물건을 사주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난 그 정도로 아이들에게 별다른 애정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 상태로 살아오다 보니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이 아이를 키우고 교육하는 것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와이프의 친구집에 놀러 갔다가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그 집엔 3살 정도 되는 잘생긴 아이가 있었는데 엄마가 밥을 먹자고 하니 도통 밥 먹을 생각은 안 하고 그저 놀고 싶은 마음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법이 없었다. 밥을 먹이는 와이프의 친구는 너무 힘들어 보였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아이는 엄마의 속도 모르고 혼자 즐거워했다. 엄마는 얼른 밥을 먹이고 편하게 우리와 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겠지만 도통 말을 듣지 않는 아이 때문에 매우 곤란해하는 상황이었다. 보통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이런 장면 자주 볼 수 있었고 '원래 아이는 그렇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그저 아무런 생각 없이 자리를 지키고만 있었다.


그러다 문득 상황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가만히 보니 그때 그 상황에서 밥을 먹고 있던 건 아이 혼자 뿐이었다. 그곳에 있던 나를 포함한 5명의 어른들은 각자 대화를 나누며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알고 보니 우리는 그렇게 끼리끼리 모여 잘 놀고 있으면서 아이 혼자만 밥을 먹으라고 강요하는 셈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이가 밥을 먹지 않고 자꾸만 일어나서 우리의 관심을 얻으려는 게 당연해 보였다. 어른들이 먼저 노는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아이에게만 밥을 먹으라고 하니 아이가 조용히 밥을 먹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했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그저 아이가 밥을 먹지 않고 날뛴다며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충분히 혼자서 숟가락질을 할 수 있어 보였다. 근데 어떡해서든 밥숟가락에 이쁘게 떠서 먹이려는 와이프의 친구분은 아이에게 숟가락을 쥐어 줄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난 속으로 끊임없이 '아이에게 직접 숟가락으로 떠서 먹어보라고 말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충분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침 내가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이의 아빠가 '나랑 있을 땐 자기 혼자 잘 떠서 먹는다'는 말에 아이의 엄마는 지친 나머지 아이에게 혼자 먹으라며 숟가락을 내려놓았고, 아이는 보란 듯이 혼자서 밥을 잘 떠서 먹었다.



부모의 한계

그때 참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부모는 도대체 아이의 한계를 어디까지 정해두고 있는 건가', '부모는 아이를 뭐라고 생각할까', '너무나 사랑하는 마음에 자기 자식을 너무 아무것도 모르는 생명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난 속으로 '훗날 만나게 될 나의 주니어는 이런 식으로 키우지 않겠다'라며 다짐했다.


언제나 난 내가 아닌 다른 존재에게 무언가를 주입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사랑하는 자식이라도 어느 정도 자의식이 생기면서부터는 교육의 한계가 두드러진다. 특히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서 자기들만의 조그만 사회를 경험하게 되면 부모가 터치할 수 있는 영역은 거의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세대 차이가 나도 너무나 나기 때문에 어른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행동했다간 자기를 전혀 이해 못 하고 있다는 생각을 아이에게 심어줄 확률이 높다.


그럴 때 부모가 할 수 있는 건 '행동으로써 직접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아이가 크고 나서부터는 직접 솔선수범을 보여주는 게 가장 훌륭한 교육이라고 믿고 있다. 아이의 상태를 아이에게 한정 지어서 볼 게 아니라, 아이와 가장 가까운 존재인 부모 자신도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걸 항상 인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무조건 부모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때문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부모 때문이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또 부모라는 이유로 아이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해도 된다'라는 마음을 심어주게 된다. 순수하기 그지없는 아이가 하는 행동은 모두 그런 것에서 나오게 된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자기 자식이라 할지라도 나와는 다른 하나의 존재다. 그런 아이가 말을 듣지 않거나, 혹은 말을 잘 듣는 건 어떤 원인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아이는 스스로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일 뿐, 아무 이유 없이 행동하진 않는다. 아이도 한 명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원인제공은 누가 뭐래도 부모가 가장 큰 역할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부모가 아이를 볼 때는 부모자신과 함께 묶어서 생각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를 비롯한 세상 모든 어른들은 아이를 보며 오히려 배워야 할 이 많다. 하지만 이 사실을 인지하며 살아가는 어른들은 아쉽게도 극소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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