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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Mar 06. 2023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네가 아빠에게 가르쳐준 세 가지

한 생명이 내게 선물한 세 가지 깨달음


새복아

아빠는 언제부턴가 아이들을 가르치려고만 드는 어른들이 오히려 아이들에게서 배워야 할 점이 참 많다고 느끼기 시작했단다. 사는 게 힘들다는 이유로 꿈을 포기하거나 즐겁게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매 순간 과거나 미래에 얽혀 있는 망상에서 헤어나오지 못 하고 있는 어른들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아이들을 바라보며 자신들의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서 나도 너를 바깥세상에서 만나면, 내가 널 가르치기보단 아빠와 엄마가 너를 바라보며 다 같이 함께 배우고 함께 성장하는 꿈을 꾸고 있었단다.


하지만 엄마 뱃속에 집을 지은지 2달이 채 되지도 않은 너는 이미 나에게 세 가지의 큰 가르침을 주었어.




첫 번째는 내가 너의 엄마, 나의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깨닫게 해 준거야. 아빠는 원래부터 세상에서 가장 나와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될 삶의 동반자인 아내를 맞이하면 내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될 거라고 믿고 있었어. 내가 네 엄마를 처음 만났을 땐 내가 꿈꿔왔던 그런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다행히도 온 우주가 이 아빠를 적극적으로 도와줬기 때문에 엄마와 결혼까지 할 수 있었고 비로소 너를 만날 수 있게 된 거야. 그만큼 난 이미 네 엄마를 많이 사랑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단다.


하지만 사랑의 깊이는 끝이 없다는 걸 알게 됐어. 네가 엄마의 뱃속에 들어서면서 엄마를 보호해야 된다는 생각, 엄마와 내가 사회적인 부부의 관계를 초월한 파트너가 되었다는 생각, 그리고 너 때문에 울고 웃는 엄마를 보며 내 안에서 들끓는 감정들 덕분에 난 네 엄마를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 그리고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눈물이 날 정도로 '내 인생은 이토록 축복받은 인생이구나'라는 깨달음도 얻었지. 새복이 네가 아니었다면 언제쯤 이런 깊은 감정을 느껴봤을까 싶어.


새복아, 사실 사람들은 '결혼은 미친 짓이다', '결혼은 현실이다'라는 말을 내세우며 결혼은 곧 고생길이 열린다는 생각들을 하고 살아. 이 아빠도 솔직히 그런 것들을 크게 의심하진 않았단다. 오히려 그런 고생길을 겸허히 받아들이고자 혼자서 책임감을 키우고 있었어.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경험담을 처음부터 끝까지 신뢰하진 않았어. 그들과 나의 세상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야.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아빠는 네 엄마와 결혼하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지만, 네 엄마와 직접 살을 맞대며 살아 보니 역시 그들의 생각은 그들의 세상에서만 통하는 진실이었어. 아빠는 네 엄마 덕분에 너무나도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단다.


머릿속으로 상상하기만 했던 사랑의 감정을 너로 인해서 몸소 체험하게 된 기분이야. 난 이미 이것 하나만으로도 너에게서 커다란 감사함을 느끼고 있고, 넌 내가 네 엄마를 얼마나 깊게 사랑하고 있는지 제대로 가르쳐 준 셈이야. 정말 고맙다.




내가 너 때문에 깨닫게 된 두 번째는 너희 엄마를 슬프게 하는 사람은 내가 얼마든지 증오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야. 아빠는 사람을 이유 없이 미워하지는 않는단다. 오히려 상대방을 미워할 만한 이유가 있어도 웬만큼은 다 이해하고 넘어가는 편이야. 그리고 난 나의 기분을 위해서라도 얼마든지 부정적인 기운을 흘려보낼 수 있는 지혜를 갖추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여전히 아빠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새복이 덕분에 깨달았단다.


부끄럽지만 사실 아빠는 너의 건강이 그리 좋지 못하다는 소식을 전한 죄 밖에 없는 의사 선생님을 속으로 증오하고 있어. 그리고 상대방의 입장을 깊게 헤아리지 못한 그 의사의 말투 덕분에 네 엄마는 많이 울었어. 그래, 아빠도 알아. 그 의사 선생님도 나름대로의 뜻이 있어서 그런 식으로 말씀하셨겠지. 하지만 모든 것을 뒤로하고 내 앞에서 울고 있는 네 엄마를 지켜보면서 내 안에 없던 증오가 일어난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구나. 그 의사 선생님이 아무런 죄가 없다는 건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 단지 네 엄마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 아빠는 그저 그 의사 선생님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어.


아빠는 스스로 그 누구보다도 성향이 온순하고 심적으로 편안한 상태를 잘 유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네 엄마의 눈물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면서 얼마든지 악마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일을 계기로 깨닫게 되었어. 하지만 아빠는 꼭 이런 게 안 좋은 일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아. 단지 내가 몰랐던 나의 다채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어서 더욱더 인간에 대해 깊게 알게 되는 좋은 경험이라고도 생각해.


새복아. 이미 너를 이렇게도 사랑하고 있기에, 네가 세상 밖으로 나오면 나의 사랑이 얼마나 더 커질지는 상상도 하기 어렵지만, 사실 너도 마찬가지란다. 미안하지만 네가 건강하지 못해서 너의 엄마, 나의 아내가 슬퍼한다면 이 아빠는 너 조차도 미워할 준비가 되어 있단다. 아빠는 그만큼 엄마를 많이 사랑해. 그러니 네가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주면 좋겠구나. 그럼 더 이상 엄마가 슬퍼할 일도 없을 테니까. 




마지막으로 너 때문에 깨닫게 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아빠와 엄마가 이렇게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기적'이라는 것을 마음속 깊이 알게 된 거야. 네가 엄마의 뱃속에 들어서고 힘겹게 자라고 있는 것을 지켜보며 한 생명이 태어나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제대로 느꼈단다. 그리고 그렇게 모든 과정을 다 이겨내고 바깥세상에 나온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기적인지도 뼛 속 깊이 깨닫게 되었어. 새복이 덕분에 아빠와 엄마는 이토록 건강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감사하고 축복받은 일인지 알게 되었단다.


이런 감사한 마음은 다 새복이 너 때문에 깨닫게 된 거라고 생각해. 책을 좋아하는 아빠는 그 많은 책들 속에서 '감사함'을 느끼라는 내용을 수도 없이 봐왔지만 사실 이번만큼 와닿은 적은 없었어. 삶의 매 순간마다 감사함을 느끼라고 조언하는 그들의 말을 새겨듣고 삶에 적용해 보려 했지만,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아. 감사일기를 써 봐도 억지로 쥐어짜 내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게 사실이란다.


그런 것에 비해 새복이 네가 아빠와 엄마에게 가르쳐 준 감사함은 그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단다. 네가 처음부터 건강했었다면 우린 아마 여전히 생명이 태어나는 것을 너무나 쉽고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너의 좋지 못한 건강이라는 제목으로 우리에게 내려진 시련은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겼던 나의 어리석음을 제대로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어.




새복아 네 덕분에 이 아빠는 보다 더 깊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란다. 엄마에 대한 사랑, 누구보다도 선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내면에도 언제나 악마가 들어설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삶에 대한 축복과 감사함을 깨닫게 해 줘서 고마워. 넌 확실히 그 누구보다도 훌륭한 나의 스승이 되어줄 것만 같구나.


너를 빨리, 그리고 건강하게 만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아빠가 할 수 있는 부분은 그리 많지 않구나. 이런 현실이 야속하긴 하지만, 아빠는 앞으로 일어날 모든 상황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생각이야. 이런 태도가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참 지혜로운 처세라는 걸 아빠보다 먼저 살아간 사람들을 통해서 배울 수 있었단다. 언젠간 너에게도 이런 참다운 지혜를 전해주고 싶어. 


새복아. 네가 아빠와 엄마의 삶에 얼마나 깊게 들어올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이미 나에게 가르쳐 준 소중한 가르침들은 평생 잊지 않을게.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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