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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Mar 20. 2023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불편해졌다

좋을 게 하나도 없는 술자리는 이제 그만


어느새 많이 변해버린 내 모습

친한 친구가 새 아파트를 얻었다. 어느 정도 집 내부가 정리됐는지 친구들을 집들이에 초대했다. 이젠 친구들의 절반 이상이 결혼을 했기 때문에 와이프들을 포함한 가족 단위로 모이는 게 'default'값이 되었지만 이번엔 다들 탈출각을 잘 잡았는지 유부남들도 혼자서들 온다고 했다. 이젠 이런 기회가 흔치 않지만, 왠지 그런 자리가 이전처럼 반갑지가 않은 건 기분 탓일까.


이전의 나라면 오랜만에 남자들끼리 모이는 자리에 연차를 써서라도 가고 싶어 했을 텐데, 이젠 내가 많이 변했다는 걸 느낀다. 친구들을 보고 싶은 마음은 분명히 있지만, 그 자리에 어울리면 내가 잃을 게 훨씬 더 많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다. 아마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아주 잠깐은 반가운 마음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의 일들은 굳이 겪어보지 않아도 충분히 그림이 그려진다.


모든 술자리는 뻔하니까. 




그들은 내가 필요한 게 아니다

즐거운 술자리를 위한 인원수는 어느 정도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다. 물론 여러 사람들이 모이면 분위기는 그만큼 흥이 돋겠지만 정작 술잔을 부딪히며 나와 소통할 수 있는 인원수는 한계가 있다. 사람이 8명 이상 모이면 자연스럽게 3,4명으로 쪼개지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모임은 내가 이 자리에 껴 있다는 소속감과 여기저기 옮겨가며 지루하지 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 말고는 큰 장점이 없다. 술자리도 사람이 많으면 산으로 가게 되어 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보통 술자리에 오라고 하는 이유는 그날의 분위기를 돋우기 위한 의도가 들어있기 마련이다. 술자리에 초대하는 사람은 '내'가 필요한 게 아니라 단지 '사람'이 필요해서인 경우도 많다. 막상 술잔을 부딪히며 한잔 두잔 마시기 시작하면 서로 자기 얘기들을 하기 바쁘다. 그나마 진취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아쉽게도 대부분은 영양가가 없다. 취기가 올라 다음날 기억도 못할 의미 없는 대화로 시간을 채우는 게 술자리의 참된 매력이다.



여전히 제자리걸음

보통 술을 자주 마시는 사람들은 인생이 멈춰 있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맛도 없는 술을 자꾸만 찾는 이유는 불만족스러운 현실을 잊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특히 친구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는 서로의 고달픈 인생을 뽐내기 바쁘다. 예전엔 친구들과 어울리면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친구들의 모습이 참 좋았었는데, 이젠 여전히 고등학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친구들처럼 느껴지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그나마 소수인원이 모이면 서로의 고충을 들어주기도 하고 소소한 솔루션을 주고받는 분위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인 술자리는 정말 실없는 말들만 오가게 된다. 모임에 참석하는 목적이 현실을 잊기 위한 것이라면 대만족을 하겠지만, 나처럼 순간에 의미를 두고자 하는 사람에겐 다수의 인원이 모이는 술자리만큼 시간이 아까운 게 없다.


난 매일 성장하며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 욕망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다. 그래서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며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이런 루틴을 매일 지키려고 노력한다. 오늘 하루 정도는 쉬어가도 되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겐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순간이 바로 오늘이란 걸 알기 때문에 내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들로 일상을 채우고 싶은 마음이 크다.



불공정한 거래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면 함께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고, 맛있는 안주도 먹으면서 술기운이 달아올라 평소엔 느끼지 못하는 감정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내 몸과 시간을 투자해 가며 술을 먹는 데 비해 내가 감수해야 할 건 너무나도 많다. 술을 먹는 것만큼 불공정한 거래가 세상에 또 있을까.


일단 술을 마신 날 저녁이 삭제되는 건 기본이다. 집에서 술을 마신다면 술기운에 의해 잠들기 바쁘고, 밖에서 술을 마신 사람은 안전하게 집에 들어간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이 정도에서 그칠 수 있다면 아마 내가 술을 지금보단 멀리하지 않았을 것이다.


술을 먹었을 때 내가 견디기 힘든 가장 큰 손해는 시간을 잃는 것이다. 술을 적게 먹든 많이 먹든 일단 전날 저녁에 마시게 되면 다음 날까지 지장이 가게 된다. 숙취가 심하면 술기운이 하루의 전체를 집어삼킨다. 그렇게 되면 내가 나와 약속한 루틴들을 전혀 실천하지 못하게 되고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만 떨어진다. 그런 날이 반복되면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도 잃을 수밖에 없다.




내가 이렇게 술을 멀리하게 될 줄은 몰랐다. 딴 건 몰라도 술은 기회가 닿는 데로 마시면서 살 줄 알았다. 하지만 독서와 글쓰기가 내 삶에 제대로 들어오게 되면서 시간이 소중해지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감이 잡히니 술 같은 건 자연스럽게 나와 멀어지게 되었다.


친구들에겐 미안하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나 혼자만의 시간이 더욱더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날더러 변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구구절절 설명할 마음도 없다. 어차피 그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들이다 보니 내가 결과로 보여주지 않으면 코웃음이나 치고 말 것이다.


세상에 나만의 기록을 남기겠다는 일념 하나로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점점 고독의 길을 걷는답시고 그들과 멀어지게 되더라도 미련은 없을 것 같다. 어차피 내 인생에 바람처럼 다가온 이들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어떤 새로운 인연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관계가 멀어질 사이라면 다른 일로도 충분히 틀어지기 마련이다. 술자리는 친분을 다지는 자리가 아니다. 단지 술기운을 빌려서 각자의 현실로부터 잠시나마 멀어지는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친구들은 언제나 보고 싶지만,

그게 술자리라면 이젠 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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